등록 : 2005.12.04 17:30
수정 : 2005.12.04 17:30
유레카
오는 7일이면 만 77살이 되는 미국의 언어학자이자 비판적 지식인인 에이브럼 노엄 촘스키가 얼마 전 수난을 겪었다. 지난 10월 미국과 영국의 유명 잡지가 공동으로 벌인 ‘세계 최고 지식인’ 조사에서 1등에 꼽힌 게 발단이 됐다.
이 조사를 계기로 10월 말 영국의 중도좌파 신문 〈가디언〉이 그를 인터뷰했는데 촘스키의 발언을 왜곡해 말썽이 났다. 보스니아 내전 와중인 1995년 자행된 스레브레니차 학살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학살에 따옴표를 쳐, 촘스키가 학살 자체를 의심하는 듯한 인상을 준 것이다. 문답 방식으로 구성된 제목은 더 심했다. 질문은 “스레브레니차 학살이 과장됐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옹호한 걸 후회하는가?”였고, 답변은 “유일하게 후회하는 건, 충분하리만치 강력하게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였다. 그런데 이 질문은 기자가 묻지도 않은 것이고, 답변은 다른 사건에 대한 언급을 따온 것이다.
게다가 며칠 뒤 가디언은 촘스키의 항의 편지를 신문에 실으면서 바로 옆에 보스니아 피해자의 투고 글을 나란히 실었다. 참다 못한 촘스키는 공개 서한을 인터넷에 올렸고, 가디언이 11월17일 잘못을 인정하는 고침 기사를 내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촘스키가 엉뚱한 혐의를 받는 건, 스레브레니차 학살 보도 태도를 비판한 어떤 작가의 책을 스웨덴의 한 출판사가 퇴짜놓은 걸 비판한 탓이다. 촘스키는 ‘공인된 주장을 거스르는 내용이라는 이유로 언론의 자유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지만, 그를 싫어하는 이들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실 촘스키의 언론관은 남다르다. 그는 서구 주류 언론을 끊임없이 비판하면서도, 그런 언론의 자유도 철저히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오해도 산다.
아무튼, 성역 없는 비판과 무정부주의적 성향 탓에 촘스키를 헐뜯는 이들이 많은 ‘덕분’에 그는 날로 유명해져가고 있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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