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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04 17:31 수정 : 2005.12.04 17:31

김병수 논설위원

아침햇발

‘한국이 큰 나라던가’ 하고 문득 자문해 본다. 수도권 공장 신설·증설 규제 완화에 대해 지역 여러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발 집회 소식을 접하면서 떠올린 물음이다. 지난달 29일 대구 두류공원 야구장에서 열린 대구·경북 규탄대회에는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 등 2만1천여명이 모였다. 강원도와 충청권의 반발도 거세다. 그러나 수도권에 들려오는 항변의 목소리는 개미소리만하다. 나라가 커서 그런가 하면 객쩍은 소릴 테고, 정치·경제·언론 모두 수도권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탓이 클 게다. 앞서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첨단 업종에 한하긴 했지만 수도권 공장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행정도시 합헌 결정 이후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는 수도권 정비계획도 짜고 있다. 정부는 수도권 규제 기조는 유지할 것이라고 하지만 지역에서는 미덥잖아 한다. 혁신도시 입지 선정을 비롯한 국토 균형발전 방안이 조금씩 진전되고는 있으나, 성과가 나타나기도 전에 수도권 공장 규제를 완화하면 내려올 공장이 남을지, 나아가 그나마 자리잡은 산업단지도 퇴보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일 터이다.

불균형 개발의 실상은 일본과 우리 농촌 실태 비교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일본 농가 소득에서 농업 외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86%에 이른다. 우리 농촌과 달리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가 같이 사는 집이 많다. 아들 세대는 인근 도시의 공장이나 다른 일자리에서 근로소득을 벌어들인다. 반면에 우리 농촌은 농업소득이 전체 소득의 절반에 이른다. 달리 돈 벌 곳이 마땅찮다. 그러니 젊은 이들은 도시로, 그것도 수도권으로 몰린다. 쌀시장 개방 진통이 일본보다 큰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지역 반발을 지역이기주의로 밀쳐버릴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갈수록 경제 기반이 약화하는 데 따른 절박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의 표현이다. 지역 호소에 아랑곳없이 수도권 정치인들의 규제 완화 요구는 더욱 드세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수도권에 공장을 더 짓는 게 과연 수도권 주민을 위한 것인지 냉철히 곱씹어 봐야 한다. 수도권의 당면 과제는 과밀 해소지 개발이 아니다. 이렇게 얘기해 보자. 수도권에 공장을 더 지어 일자리를 만들면 당장은 나아질지 모르나, 길게 보면 일자리를 찾아 더 많은 사람들이 수도권으로 몰려올 테고 수도권은 더욱 미어터진다. 일자리 수요는 또 생길 터이고 공장은 더 지어야 한다. 악순환이다. 수도권 삶의 질을 높이려면 역설적으로 양에 치우친 일자리 창출은 억제하는 게 장기적 해법이다.

게임이론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최적의 선택과 거리가 먼 결과를 낳는 사례를 수없이 보여준다. 국토 균형발전 문제도 비슷하다. 모두 수도권에 공장을 지으려 하면 아무도 지역으로 내려가려 하지 않는다. 나 홀로 가봐야 배후시설이 없고 좋은 인력도 구하기 어려운 탓이다. 수도권은 더욱 비대해져 투자여건이 나빠지고, 지역은 황폐해져 간다. 수요가 수요를 부르는 ‘밴드 왜건 효과’와 다르지 않다. 물꼬를 돌리기 위해 게임이론은 협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기업이 뜻을 같이하거나 누군가의 조정으로 지역에 공장을 짓기 시작하면 배후시설이 갖춰지고 인력도 찾아온다. 한두 개 공장으론 이런 효과를 내기 어렵지만 여러 공장이 함께라면 집적 효과가 커지기 때문이다. 땅값이 싸니 투자비도 적게 든다. 큰 걸림돌은 수도권 정치인과 지방자치단체의 근시안적 지역이기주의다. 나라 장래를 위해서뿐 아니라, 진정 수도권을 위한 선택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김병수 논설위원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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