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05 18:20
수정 : 2005.12.0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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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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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다음주 홍콩에서는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린다. 이번 회의는 2001년 도하 각료회의에서 시작된 소위 ‘도하 개발 어젠다’를 마무리 짓는 회의이기에, 많은 사람들은 이 회의가 성공하면 후진국 경제발전에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도하 개발 어젠다의 핵심은 선진국이 농업 관세와 보조금을 낮추고 그 대가로 후진국들이 공산품 관세를 인하하는 것이다. 도하 어젠다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하여 각자 비교우위가 있는 분야에 특화하면 선·후진국 모두 이득이라고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선진국의 농민과 후진국의 제조업체들이 희생되겠지만, 세계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후진국에 사는 농민임을 고려할 때 후진국 농업을 돕는 정책이 진정으로 빈곤을 줄이는 길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엄청나게 문제가 많은 주장이다. 우선 경제성장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홍콩 회의가 성공하면 후진국들은 공산품 관세를 대폭, 그리고 영원히 내려야 한다. 미국은 2015년까지 아예 공산품 관세를 없애자고 제안했고, 유럽연합은 후진국의 공산품 관세 평균을 지금의 10~70%에서 5~10%로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제발전을 위해 관세를 적절히 사용할 필요가 있는 후진국의 처지에서 5~10% 이상의 관세를 쓸 수 없다는 것은 경제발전을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바로 이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현재의 선진국들은 경제발전 초기에 보호무역을 사용했던 것이고, 또 제국주의 시대에는 약한 나라들을 식민지화해 자유무역을 강요하고, 식민지화되지 않은 중국·터키 등의 나라들에는 불평등 조약을 강요해 5%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이러한 대폭적인 관세 인하에 대해 후진국들이 우려를 하면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비율적으로 공산품 관세를 더 내리게 되어 있으니 후진국들은 특별대접을 받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예를 들어 공산품 평균관세가 3% 되는 선진국이 관세를 80% 인하하여 0.6%로 낮추고 관세율이 35%인 후진국이 관세를 70% 인하하여 10.5%로 낮춘다면, 비율로 볼 때는 선진국이 더 희생을 하는 것 같지만, 그 영향력은 정반대다. 3%이던 관세가 0.6%로 내려간다고 수입이 크게 늘지는 않지만 30%가 10.5%로 내려가면 수입이 크게 늘어날 수 있고, 따라서 자국내 산업에 막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빈곤 해소 문제에서도 그렇다. 선진국이 주로 보호하는 농산물은 밀, 쇠고기, 낙농제품 등 온대지방에서 생산되는 농산품들인데, 대부분 열대지방에 사는 후진국의 가난한 농민들은 수입이 개방된다고 해도 이러한 제품을 생산할 수 없다. 따라서 선진국 농업 개방의 덕을 가장 크게 보는 것은 주로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온대지방 농업에 우위가 있는 다른 선진국들이다. 게다가 이런 나라들의 농업은 대부분이 기업화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스위스, 노르웨이 등과 같은 나라에서 농업을 개방하는 것은 자기 나라에서 약자인 농민들을 희생하여 미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돈 많은 기업농, 심지어는 농업에 특화하는 다국적 기업들을 도와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도하 개발 어젠다가 성공하면, 그 지지자들의 주장처럼 후진국 경제가 발전하고 후진국의 빈곤이 해소되기는커녕 그 반대의 결과가 나올 것이다. 세계무역기구가 진정으로 유용한 기구가 되려면 말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후진국을 위하는 어젠다가 설정되어야 한다.
장하준/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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