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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05 18:22 수정 : 2005.12.05 18:22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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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에 이어 올해에도 익산, 진주 등에서 학생들 사이의 성폭력 범죄가 잇따라 발생해 사회적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상담 현장의 경험에서 보면, 언론 보도는 실제 발생한 사건에 견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더구나 학교 성폭력은 성폭력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주변에서 적절한 도움을 주지 않으면 피해 학생은 정신적, 육체적 후유증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 그런데도 성폭력 피해 학생들은 학교로부터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해 학생들에 대한 교정교육도 안 되고 있다. 피해 학생을 지원하기보다 오히려 ‘문제 학생’으로 취급하여, 결국 피해 학생이 전학을 가거나 심지어 학교로부터 전학을 강요받는 등 학내 2차 가해 문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실태는 현행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성폭력이 제외되어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성폭력 피해 후유증으로 결석하면 일반 학교폭력 피해자들과는 달리 출석일수에 산입되지 않아 피해 학생의 진로에 현실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도 그런 경우다. 이는 성폭력 예방 의무와 피해 발생 때 지원 역할이 학교 공동체에 있음에도 문제의 해결과 극복의 책임을 온전히 학생 개인에게만 돌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현재 국회에는 학교폭력에 성폭력을 포함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학교폭력 관련법 개정안이 상정되어 있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를 비롯한 일부에서는 학교 성폭력 문제는 이미 성폭력특별법이 학교폭력 관련법에 앞서서 적용되기 때문에 굳이 학교 폭력으로 다루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학교 성폭력을 형사처벌의 좁은 관점에서만 바라보면서, 피해 학생들의 권리 확보와 치유 문제 등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폭행, 협박 등 다른 범죄행위가 이미 형법에 규정되어 있지만 학교폭력으로 특별히 다루는 것은 정부가 학교폭력 근절 의지를 표명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굳이 성폭력을 대상에서 제외할 이유가 없다. 성폭력특별법에서의 권리조항이 수사, 재판 과정에서 2차 피해를 최소화하는 장치라면, 학교폭력에서 피해자 보호 장치들은 단지 피해자라는 이유로 학습권과 학교에서의 일상적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하는 의미를 지닌다. 학교 성폭력은 형사적 처벌만이 아니라 학교공동체 안에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가해자 교육, 피해자 치유를 위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비로소 해결할 수 있다.

또한 실제 학교폭력 사건을 처리해갈 학교폭력대책위원회 위원들의 인권 의식과 성폭력에 대한 올바른 시각, 그리고 전문성 확보를 위해서도 학교 성폭력은 학교폭력의 범주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성폭력 문제는 좀더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이해와 사회구조적인 접근, 사건 지원 경험의 노하우 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사건 처리과정에서 피해 학생의 비밀을 보장할 의무도 엄중히 지켜져야 할 것이다. 영국이나 노르웨이 등 외국에서 학교폭력에 성폭력을 포함하여 대처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학교 성폭력은 상당부분 문화적 배경에서 비롯된다. 여학생을 차별하고 비하하는 문화와, 경미하다고 쉽게 용인해버리는 성희롱적 언행 등 일상적 문화가 그것이다. 학교폭력 관련법에 성폭력 조항이 포함돼 학교와 정부가 학교폭력의 사후대처만이 아니라 반성폭력 인권교육 등 예방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에 나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미경/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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