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06 18:13
수정 : 2005.12.06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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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자 가톨릭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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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이쯤에서 접자’는 사회 분위기이지만,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는 심정에서 황우석 교수와 관련한 그간의 많은 얘기들에 한마디를 더 보태고자 한다. 특히 과거사 진상 규명이 국가적 과제로 대두한 이 마당에, 오늘의 역사가 차후 또 다른 과거사 진상 규명의 과제로 재론되지 않게 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역사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문화방송〉이 ‘피디수첩’의 불미스러운 취재 과정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한 이상, 이 문제는 일단락된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얻은 교훈은 모든 언론사가 차제에 그간의 ‘취재 관행’의 정당성에 대해 다시 한번 면밀하게 성찰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사과를 받은 국민은 앞으로 이러한 관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열심히 언론을 견제하고 자기감시도 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분명하게 가려야 할 것은 있다. 방송사의 ‘고압적’인 취재 방식이 황 교수 팀의 한 연구원으로 하여금 진실을 왜곡하면서까지 ‘협조’하도록 만들었는지, 아니면 취재 방식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 연구원이 피디수첩 쪽에 진술한 부분은 여전히 진실로 남는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아직까지 남은 숙제는 그동안 제기된 의혹들을 푸는 일이다. 그 주체는 물론 황 교수 연구팀일 수밖에 없다. 황 교수는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한몸에 받고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된 만큼, 국민의 신뢰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더구나 이 신뢰는 한국 과학과 국민에 대한 전 세계의 신뢰와도 상통하는 것이기에 절대 소홀히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이 상황에서 ‘국익’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면, 한국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과학적 성과 이상으로 백배 더 값지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미 외국의 각종 논평에서는 한국에 대한 신뢰 문제가 거론되거나 한국의 과학적 업적에 대해 앞으로 더 엄격한 검증을 하겠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황 교수는 이제 한국 국민을 대신해서 자기성찰적 진정성을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혹시라도 한국 과학의 쾌거에 공연한 ‘흠집내기’를 하려는 기류가 있다고 한다면, 또는 그간에 한국의 압축적 성장이 편법적 관행에 의존해온 것이라는 불신이 있었기에 이번의 사건도 그러한 배경을 정당화할 소지가 있다면, 이러한 것들을 불식시키는 기회로 삼아야만 할 것이다. 과학적 진실은 과학자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밝혀지기 마련이라고 하더라도, 그 자연적 흐름에 맡기기보다는 진실을 투명하게 밝히고자 하는 의지와 진정성을 아주 확실하게 전 세계에 보여주는 것만이 우리 모두를 살리는 일이다.
우리 스스로가 ‘진실을 사랑하는 민족’으로서 자부심을 가지려면 당장에 혼란과 아픔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기꺼이 감내할 의지와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 민족사에 묻혔던 진실들을 이제야 하나하나 끄집어내는 진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도 바로 진실을 사랑하는 민족으로 거듭나기 위한 불가피한 여정이다. 또한 오늘의 세계화전쟁에서도 강자의 진실 왜곡에 맞설 수 있는 무기는 바로 우리의 진실한 역사일 것이다.
황 교수의 과학적 진실도, 문화방송의 진실 규명 노력도, 다 같이 우리의 진실의 역사를 드높이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를 간절히 고대한다. 이번 일로 인해 우리의 생명과학이 설사 ‘6개월을 후퇴한 셈’이라고 하더라도, 그 대가로 한국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진다면 이는 후퇴가 아니라 획기적인 진전이 될 것이 틀림없다고 믿는다.
이영자/가톨릭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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