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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07 22:17 수정 : 2005.12.07 22:17

야마무로 신이치 일본 교토대 교수

세계의창

11월 초순, 서울대 외교학과의 심포지엄을 마치고 광주를 방문했다. 내게 광주는 1929년 일어난 반제국주의 운동의 발단인 광주학생사건, 그리고 1980년 5·18 민중항쟁으로 인해 오랫동안 마음이 쓰이는 도시였다. 전자는 역사적 지식으로 배웠다. 후자는 연일 나오는 텔레비전과 신문 보도를 주시하면서 일본에서 민주화 탄압 반대 집회·시위에 참가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내게도 동시대의 사건이었다. 5·18 민중항쟁을 정력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정호기 전남대 교수의 안내로 망월동 묘지와 민중항쟁추모탑 등을 돌아보니 당시 기억이 또렷이 되살아났다.

귀국 뒤, 부산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이 평행선으로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12월 방일 가능성도 사라진 듯하고, 국교정상화 40돌을 기념한 ‘한-일 우정의 해’도 응어리를 남긴 채 막을 내리고 있다. 정상 외교와는 별도로 국교 회복 당시 연간 1만명 정도이던 양국 국민의 왕래는 지금 400만명에 이른다. ‘한류사천왕’ 가운데 한 명인 원빈의 입대를 지켜보기 위해 일본 여성들이 춘천시를 찾은 것이 화제가 되는 등 일본에서 한류열풍은 계속되고 있다. 반면, 지난 7월 나온 만화 〈혐한류〉가 30만부를 넘기는 등 반한감정을 부추기는 논조도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5·18 민중항쟁을 거쳐 한국의 민주화가 점진적으로 착실하게 진전한 것처럼, 한류도 목표지점이 아니라 상호이해를 위한 문화교류가 마침내 시작된 것을 뜻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가지 문제나 대립이 있다고 해도 나는 두 나라 관계의 장래에 대해 절망은 하지 않는다. 절망은 다른 사람을 경멸해 서로 이반시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심포지엄의 주요 논제는 근대 세계사에서 동아시아가 가진 의의와 지역 공동체 형성의 가능성이었다. 그것은 14일 열리는 제1회 동아시아정상회의를 내다본 것이었다. 이 지역에서 살아가는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로서 스스로의 환경·경제상황에 맞춘 새로운 공간을 어떻게 만들고, 지구환경 문제로 대표되는 지구적·인류적인 과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금 묻기 위한 것이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세계에서는 구미를 따라잡는 것을 ‘근대화’라고 간주했다. 과학연구는 그 과제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사회의 분석과 이해에 대한 ‘과학적’ 방법을 구미로부터 배우는 동시에, 그것을 이용해 사회를 ‘개혁’해 국제적 지위를 상승시키는 것이 실천적 과제가 됐다. 구미의 사회나 과학에 대한 본질적 비판이나 의문은 거의 제기되지 않았다. 항상 구미의 최신의 것을 쫓아가야 한다는 게 강박관념이 됐다.

그렇지만 세계화의 진행으로 현재 일본 사회가 직면한 과제의 상당수는 일본 고유의 문제를 넘어 인류 사회의 공통 과제가 되고 있다. 일본의 과제는 한국의 과제가 돼, 이제 두 나라의 인문·사회과학은 현재의 사회와 학문에 대한 내재적 비판인 동시에 새로운 사회지침이나 행동원리를 나타내는 것이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일본과 한국의 인문·사회과학은 고유하면서도 보편적인 과학이론으로서 비약할 가능성이 있다.

2005년은 일본에서 ‘동아시아공동체 원년’이라고도 불려왔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실정에 맞는 새로운 세계상을 만들려면 새로운 틀을 가진 인문·사회과학을 창출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위한 공동의 시도가 이제 겨우 시작됐을 뿐이다. 여기서도, 절망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내일을 여는 유일한 길이다.

야마무로 신이치/일본 교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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