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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08 18:35 수정 : 2005.12.08 18:35

유레카

1998년 4월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 구석기 유적에서 탄화 씨앗 40여톨이 출토됐다. 이 중에는 볍씨 11톨이 포함돼 있었다. 그때만 해도 발굴팀은 이 씨앗들이 세계 학계와 기존의 학설을 뒤흔들 줄은 몰랐다.

방사선 탄소연대 측정 결과 1만3천~1만5천년 전의 것으로 나타났다. 놀라움 그 자체였다. 2001년에 더 발굴돼 모두 4개종 59톨이 확보됐다. 발굴팀장 이융조 충북대 교수는 1999년 말 제4회 국제 벼 유전 학술회의와 2003년 제5차 세계 고고학대회에 이를 보고했고, 소로리볍씨는 세계 최고로 인정받았다.

당시까지는 중국 후난성 양쯔강 유역에서 출토된 볍씨(1만1천년 전)가 최고였다. 한반도에선 경기도 김포의 4천~3천년 전 볍씨, 평양 대동강가의 3천~2500년 전의 볍씨가 가장 오래된 것들이었다. 학계는 이를 토대로 벼농사가 6500~1만년 전 인도의 아삼, 중국의 윈난 등지에서 발생해, 중국의 화중지방을 거쳐 3천~4천년 전 한반도에 전파된 것으로 여겼다.

이런 가설을 소로리볍씨는 뿌리부터 흔들어버렸다. 게다가 형태와 조직으로 보아 야생종에서 재배 벼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의 것으로 분석됐다. 벼농사가 한반도에서 시작돼, 이것이 인도·중국 등으로 이동했다는 가설이 가능해진 셈이다.

최초 여부를 떠나 소로리볍씨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쌀은 1만5천여년 동안 한반도의 생명을 키웠다. 농경사회가 정착하면서 공동체 문화의 뿌리가 됐다. 그러니 쌀이 우리 몸의 원형질이요, 우리 문화의 영혼이라고 한들 누가 감히 반대할까.

오늘도 우리는 차지고 윤기 흐르는 쌀밥 한 그릇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흰색 가운데 가장 건강한 미백의 쌀막걸리로 하루의 고달픔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발효시킨다. 그 앞에서 오늘 도태의 위기에 몰린 우리 쌀의 슬픔, 그 때문에 먼저 간 전용철씨 등을 기억하자.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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