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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09 21:55 수정 : 2005.12.09 21:55

이근영 사회부 기자

편집국에서

이맘때였다. 6년 전 무릎까지 오는 눈을 밟으며 관악산 기슭의 서울대 수의대 황우석 교수 연구실을 찾았다. 황 교수는 문학도에게 동물복제에 대해 2시간 동안 강의 수준의 설명을 열정적으로 해줬다. 그 사이 20여통의 전화가 걸려와 인터뷰는 번번이 끊어졌다. 황 교수는 모든 전화를 일일이 친절히 받았다. 그때마다 필자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이 건네졌다. 돌아올 때 받은 동물복제 설명자료에도 그의 진지함은 듬뿍 묻어 있었다.

두 번째 황 교수를 가까이서 본 것은 동료 기자들과 그의 농장을 찾았을 때였다. 야트막한 구릉에 자리잡은 축사에서는 그가 복제한 소들이 자라고 있었다. 기자들에게 직접 소 난자에 체세포 핵을 집어넣어 보도록 하고서, 그 난자를 어깨까지 오는 고무장갑을 끼고 직접 소 자궁에 집어넣는 시연을 해보였다. 그는 수만번 같은 일을 반복했노라고, 국내 최초 복제소는 그런 땀과 노력으로 빚어졌다고 했다.

황 교수는 일견 언론의 속성을 꿰뚫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여기자는 끝내 ‘특종’을 확인해 주지 않는 황 교수 앞에서 울고 가기도 했단다. 방송사 요청으로 갓 태어난 형질전환 복제돼지를 농장에서 서울로 옮기다 죽이는 일이 생겼어도 한마디 푸념이 없었다. ‘언론 플레이의 귀재’라는 별명도 그의 천성이 낳은 부산물인지 모른다. 황 교수가 올해 5월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하기 직전, 국내에 곧 중요한 연구성과가 나온다는 소식이 전해져 확인을 요청하는 취재진에게 “사이언스는 아니다”라고 했을 때도, 지난해 엠바고 파기 사건으로 치도곤을 치른 터이기도 했지만, “국익을 위해 사실을 얘기 못했다”는 그의 해명에 기자들은 토를 달지 않았다.

‘피디수첩’이 황 교수가 배양한 배아 줄기세포의 진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려 한다는 사실을 밝힌 것은, 그래서,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제작진이 연구 절차의 흠결 정도가 아니라 신실성에 리트머스종이를 대려 할 정도로 중대한 제보를 받았는지는, 피디수첩이 ‘산화’해 당장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피디수첩이 취재 과정의 하자로 중도하차했을 뿐이어서 ‘진실의 저울’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피디수첩의 프로그램 방영은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피디수첩은 고발 프로그램이다. 방송이 됐대도 해법은 여전히 사회가 떠안아야 한다. 몫은 이미 넘겨졌다.

과학자의 일이니 과학계에 맡기라는 논리가 가장 힘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지난해 독일 물리학자 얀 헨드리크 쇤의 논문 데이터 조작 사건은 또다른 물리학자의 문제 제기를 발단으로 드러났다. 연구원이 속한 대학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소속 교수의 논문에 대한 동료 교수들의 지적이 일자 자체 조사위원회를 발동해 일부 논문에 신뢰성이 없음을 밝혀낸 일본 도쿄대가 사례로 꼽힌다. 연구비를 지원한 기관이 조사에 나서도록 돼 있는 외국의 범례가 소개되기도 한다. 지난해 영국 <비비시방송>이 의혹을 사고 있던 물리학자 루시 탈레야칸의 음파 핵융합 논문에 대해 다른 과학자들과 함께 했던 재현실험을 들어 여전히 언론이 맡아야 할 몫도 남아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중복 사진 논란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보도에서 “한국에서(In South Korea) 제기된”이라는 글귀를 보고 ‘한국의 자정능력을 인정받았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는 한 생명과학자의 고백은 하나의 이정표를 시사한다. 모든 방안은 차선일 뿐이다. 황 교수 스스로 ‘홍역’을 치유할 최선의 진단과 처방을 내놓을 때 사회는 옆에서 열성으로 도울 것으로 믿는다. 힘을 내어 일어나시라, 신실성을 다시 보여주시라 간곡히 부탁드린다.

이근영/사회부 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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