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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13 18:34 수정 : 2005.12.13 18:34

이봉수 런던대 박사과정·경제저널리즘

경제전망대

“누구도 맨체스터 거리에서 축구를 해서는 안 된다.” 1608년 맨체스터 영주 재판소가 발표한 축구 금지령이다. 축구장이 없던 시절, 거리에서 축구를 하다가 유리창을 깨거나 행인을 다치게 하는 등 질서를 해친다고 축구에 내려진 족쇄였다. 그로부터 400년, 이제 축구는 맨체스터 도시경제뿐 아니라 영국을 먹여 살리는 한 산업이 됐다. 오로지 공 하나로 격돌하는 이 단순한 스포츠는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들을 광적인 관중으로 끌어들이며, 산업혁명과 더불어 급성장했다. 오래된 명문구단들이 맨체스터, 리버풀, 바르셀로나, 밀라노(인터밀란, AC밀란), 토리노(유벤투스) 등 신흥공업도시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노동시간 단축과 여가시간 확대로 발달한 축구는 사회통합에 공헌하는 한편으로 노동운동 순치와 부르주아 헤게모니 유지에 기여하기도 했다. 축구장에서는 상대편과 우리편이 있을 뿐 노동자든 자본가든 한 덩어리가 된다. 영국 노조지도자들이 축구 때문에 노동운동이 어렵다고 말할 정도로 노동자들의 축구 열기는 대단하다. 평생 일말고는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온 듯한 이웃 노인은 “죽으면 프리미어리그 못 보는 게 서럽다”고 말한다. 축구는 가장 서민적이면서도 가장 자본주의적인 경기다. 영국 프리미어리그가 세계 최고 인기를 끄는 것은 자본의 이해관계와 경쟁논리가 관철되기 때문이다. 국내 리그이면서도 수입선수가 주축인 다국적팀들이 격돌한다. 영국 기업에 관심도 없던 미국·러시아 재벌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를 인수했다. ‘섹시하다’는 주제 무리뉴 감독이 삼성전자 휴대폰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광고 간판이 히드로공항에서 런던 도심까지 이어진다.

자본의 무한경쟁 무대에 박지성과 이영표가 뛰고 있다. 그들의 성공, 나아가 한국 축구와 스포츠 마케팅의 발전을 위해서도 축구에 깃든 자본의 생리와 경제 논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심오하게 생각할 것도 없이, 스콜스와 긱스는 왜 그토록 박지성에게 패스를 안 하는 걸까? 인간성이 ‘드러워서?’ 아니다. 그들은 박지성과 같은 미드필더로서 ‘대체재’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반 니스텔루이와 악동 루니가 박지성에 호의적인 것은 ‘보완재’ 관계로 설명할 수 있겠다. 공을 배급하는 박지성이 둘의 성적표를 좌우한다. 이영표가 주전 자리를 굳힌 것도 선수층 얇은 왼쪽 수비수로서 ‘희소재’ 구실을 썩 잘 하기 때문이다. 트레이드 시장은 내년 초 또 선다. 구단들은 포지션이 겹쳐 ‘교환가치’가 큰 선수를 방출하고,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사용가치’가 큰 선수를 확보하려 들 것이다.

주말에 설기현이 또 한 골을 터뜨렸다. 한국선수들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잘 뛸수록 ‘제값 못 받고 왔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구단들은 중계권을 비롯한 아시안 마케팅으로 막대한 이익을 올린다. 유럽 2류 구단들은 유망주들을 헐값에 스카우트해 거액 이적료를 받고 팔아 넘기는 ‘중간상인’ 구실을 한다. 에인트호벤도 백억원대 이적료를 요구해 박지성의 앞길을 막을 뻔했다. 유럽 에이전트들은 후진국의 어린 선수들을 ‘축구화 값’에 입도선매해 큰 이익을 뽑는다. 이동국 박주영 이천수 등 한국 유망주들은 수백억원대 몸값의 이곳 선수들과 충분히 겨뤄 볼 만하다. 축구장은 ‘인신매매’의 견본시장이며 예측불허의 마케팅 현장이다. 영국에는 리버풀대, 맨체스터대 등에 축구 엠비에이(MBA) 과정까지 설립돼 있다. 에이전시와 스포츠 마케팅 분야의 국제화가 시급하다. 그것이 스포츠 시장의 ‘큰손’에게 우리 선수와 기업들이 휘둘리지 않는 길이다.

이봉수/런던대 박사과정·경제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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