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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15 17:53 수정 : 2005.12.15 22:07

김갑수 문화평론가

세상읽기

조금 빨리 기자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었다. 허탈하다. 2005년 황 교수의 논문은 조작이었다. 아예 줄기세포가 없는지, 몇 개를 뻥튀기한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그게 그거다. 하, 이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

그동안 가히 ‘줄기의 난’이었다. 첩첩산중, 점입가경, 날마다 무언가가 한 건씩 터져 나왔다. 불우하게도 나는 이 사건 초기에 붙잡혀 버렸다. 윤리 논란을 넘어 문제의 사진조작 의혹을 터뜨린 브릭(BRIC) 게시판 ‘무명씨’의 글도 그날 바로 읽었다. 전공자들이 그 글에 대고 ‘맞다, 맞아. 달라야할 사진이 이렇게 같을 수가!’ 하며 줄줄이 의혹과 분노의 댓글을 달 때 나는 망연했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정확히 어떻게 문제인지 ‘인문’의 눈으로는 당최 명철하게 이해할 수가 없어서였다. 이어지는 숱한 의혹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심리적 반감이 커져갔다. 과학이 아닌 세상사의 일로 문제의 ‘핵’을 ‘치환’해 보았기 때문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누가 있으랴, 쯤으로 말이다. 그러나 결국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바로 조금 전까지도 나의 줄기는 ‘분화’를 거듭하고 있었는데, 믿고 싶었는데, 정말 너무도 간절하게 믿고 싶었던 것인데….

무엇이 전국민을 줄기의 열광으로 밀어 넣었던 것일까. 어째서 가치중립이라는 과학적 진실의 문제가 좌-우 이념대립으로까지 비화되었을까. 더 나아가 좌우 양 진영을 대변하는 언로의 베이스캠프가 뒤바뀌거나 비틀리면서까지 혼돈의 아수라장이 펼쳐진 것일까. 흡사 원수지간 같아 보이는 <서프라이즈>와 <조선일보>가 같은 객석에 앉게 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정직하게 말해 열광의 배경 가운데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추리소설은 생전 처음 본다. 조작, 협박, 음모, 배신, 우국과 매국, 에스에프 스릴러물의 흥미 요소가 총체적으로 펼쳐졌다. 내게는 분명 월드컵 축구보다 줄기가 훨씬 흥미로왔다. 하지만 재미로 설명하기에는 사안의 의미가 너무 커져 버렸다. 사건 초기, 피디수첩팀 못지 않은 악역이 누구였던가. 엉뚱하게도 시사평론가 진중권씨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었다. 황 교수 옹호자들에게 ‘애국질 하지 마라!’ 했던 입바른 일갈 때문이었다. 평소 나도 집단주의나 무반성적 애국심이 횡행하는 풍토에 반감을 갖고 있던 터였지만 ‘애국질’ 운운 하는 성마른 소리에는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전체 과정은 그렇게 번지고 커져 나갔다. 사안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열기가 아니라 평소 소신의 관철을 위한 도구로 줄기가 ‘착상’돼 버린 것이다.

건국이래, 아니다, 세계사에 이렇게 심오한 학문적 주제를 놓고 한 국가가 떠들썩했던 사례가 또 있을까. 어쩌면 논란 속에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사안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제 만난 일본인에게 한국인의 과학적 열정을 전혀 자랑할 수가 없었다. 엄정히 말해 우리의 관심이 윤리나 과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미주알고주알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취재가 아닌 취조의 방송 관행이 알고, 그 반대편 병원에 깔린 진달래 꽃길이 알고, 유태인 혹은 미국 중앙정보부가 동원된 무성한 음모론이 안다.

우리는 너무나 거칠었다. 그리고 단정적이었다. 그 거칠음과 성급한 단정의 풍토에는 의혹 제기의 진원지이자 승리자인 소장 생명공학자들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해 못하는 비전문가들을 향한 그들의 글은 냉소, 조롱, 멸시가 주조였다. 어쨌든 진실의 자리에 믿음을 채워넣으려던 시도는 패배했다. 어찌하나, 헐!

김갑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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