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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18 17:56 수정 : 2005.12.18 17:56

김종휘 문화평론가

야!한국사회

한해를 마무리하는 이때에 적합한 화두가 무엇일까 고민했다. 결론은 ‘사과’. 이맘때면 우리는 각자 한해 밥벌이의 손익을 따져보며 다소 사악한 마음도 품지만, 자신이 남긴 관계의 상처들을 돌아보며 연민의 마음도 되찾는다. 게다가 올해는 정부의 몇몇 부처가 어두운 시대의 과오를 사과하겠다고, 국가 차원에서는 친일과 독재의 과거사 반성을 국정 지표로 삼자고 역설하기도 했다.

하여 올해는 개인에서 국가까지 자신의 사과에 대해 돌아봐야 할 터인데, 과연 누가 얼마나 사과를 했을까 궁금해졌다. 검색을 해봤다. 사과, 반성, 고백 등의 단어를 치고 뉴스를 뒤져 보니 가장 빈번하고 절절하게 사과한 이들은, 비록 그것이 쇼에 불과해도 정치인이 정상을 차지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연예인이 압도적이었다.

음주운전 했다고, 파혼했다고, 약물 썼다고, 도박했다고 그리고 얼버무리려다가 내뱉은 최초의 헛말이나 거짓말 때문에 한층 맹렬한 질타를 받았던 연예인들은 바로 그 다음 순간에 하인처럼 머리를 조아리고 애절하게 사죄하며 눈물로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각종 사건 사고에 연루된 연예인이면 거의 백퍼센트에 가깝게.

반면 정치인의 사과란 추상적인 거대 공론일 때는 한없이 공들인 문학적 수사의 꽃밭을 거닐며 갖은 퍼포먼스를 선보이다가도, 사법적 책임에 직면하면 끈질긴 오리발을 최후까지 재활용하고, 그러고도 꼬리를 잡히는 마지막 추한 장면에서마저 “역사의 평가를 믿는다”는 장중한 미스터리를 남겼다.

이에 비하면 올해 사과를 했던 모든 연예인의 그것은 얼마나 민망한가. ‘그렇게까지 잘못한 것은 아닌데 이렇게까지 사과해야 하나’ 싶은 억울함이든, ‘내가 왜 그런 잘못을 저질렀을까요’ 자문하게 되는 감정의 소용돌이든, 아니면 빠른 복귀를 위한 전략적인 자세 낮춤이든 연예인의 사과는 확실히 과해 보인다.

그들의 일이 워낙 과하다 보니 사과도 과하게 한다고 치부할 수 있겠으나, 나는 연예인의 사과에 다른 시선을 걸쳐 두고 있다. 요컨대 한국 사회의 국민 또는 대중은 자신보다 우월한 지위의 권력자에게 참된 사과를 받아본 경험이 없다 보니 누적된 불만의 화살을 연예인의 과오에 봇물처럼 쏟아붓는 게 아닌가 하는.

이런 혐의를 나 자신에게 돌리면, ‘사과란 해본 사람이 받을 줄도 제대로 안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정치인의 적반하장 사과든 진심이 의심스러워지는 연예인의 달뜬 사과든, 그것을 국민과 대중의 일원이 되어 넙죽 받는 나는 과연 누구에게 무엇을 사과해봤던 걸까 싶고, 나에게 적합한 사과란 내가 해본 만큼의 사과가 아닐지 망설이게 된다.

불교에선 사과를 참회라고 한단다. 참회란 미미할 때는 미열과 눈물이 나고, 다음에는 숨구멍에 땀이 배고 눈에선 피가 흐르며, 경지에 이르면 숨구멍과 눈에서 모두 피가 나온다고 한다. 미열이 스치는 사과라도 해본 사람은 어쩌면 사과를 받으면서도 전신에 미열이 일어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그럴까. 내 주변을 돌아보니, 가난하거나 나이가 어리거나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들만이 그런 사과를 해본 사람이었다. 사과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사과를 받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들에게 먼저 사과를 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각자 자기 몸의 미열부터 느껴봐야 하지 싶다.

김종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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