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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21 18:11 수정 : 2005.12.21 18:11

신상훈 방송작가

야!한국사회

‘커닝’이란 단어를 소리 내서 빨리 다섯 번 말해 보세요.

“커닝커닝커닝커닝커닝.”

“미국의 초대 대통령은 누구?” “링컨!?”

오락시간에 사회자가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 웃음을 유발할 때 쓰는 방법이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누군지 모르지 않을 텐데 입에 익숙한 말이 머리의 사고를 지배해서 그런지 ‘링컨’이라고 쉽게 튀어나온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은 알다시피 조지 워싱턴이다. 그의 이름을 따서 수도도 ‘워싱턴 디시’가 됐고, 1달러짜리 지폐에도 그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워싱턴 하면 유명한 일화가 생각난다. 워싱턴의 아버지가 집에 와서 보니 무척 아끼는 벚나무가 도끼로 잘려나갔다. 누가 그랬느냐고 불같이 화를 내자 워싱턴은 “제가 그랬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정직함에 아버지가 용서해 줬다는 이야기. 그런데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용서해주지 않을 아버지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들의 손에 도끼가 들려 있으니까. 이 조크는 개그맨 김형곤씨가 해준 것인데, 그가 연말에 엔도르핀이 돌게 하는 스탠드 업 공연을 한단다. 안 그래도 웃을 일 없는 국민이 실컷 웃을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공연이 잘 돼야 될 텐데~’.

이 글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쓰고 있다. 이곳의 한인들도 모이면 황우석 교수 이야기뿐이다. 지난주 방문했던 한인교회의 설교 시간에도. “솔직히 줄기세포가 뭔지 테라토마가 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가슴 아픈 사실은 여러 해 동안 같이 일해오던 팀이 사분오열로 찢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급속한 성장의 배경은 무엇일까? 누구나 높은 교육열을 꼽을 것이다. 나는 못 먹고 못 입어도 자녀가 한 자라도 배우겠다면 소를 팔아서라도 대학에 보냈다. 문맹률은 가장 낮고 대학 진학률은 가장 높다. 가끔 사회적인 이슈가 터지면 온 국민의 지적 수준이 한 차원 높아지기도 한다. 오양은 중년남성들에게 컴퓨터 파일 다운받는 방법을 하루만에 가르쳤으며, 황 교수는 생명과학 관련 전문용어를 전 국민이 생활용어처럼 사용하도록 하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정말 우리 국민은 도서관이든 화장실이든 가리지 않고 학문을 조이고, 학문에 힘쓰며, 학문을 닦고 있다.

그런데 항상 뭐 닦지 않은 것처럼 찜찜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 그럴까? 정말로 배워야 할 것을, 정말로 우리가 가르쳐야 할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로 ‘정직’이라는 두 글자. 이제 우리 과학계는 세계로부터 의심을 받는 양심불량국가가 된 느낌이다. 뭐 꼭 과학계만 그런 것은 아니다. 어제 산 구두가 맘에 들지 않아 교환하려고 로빈슨 메이 백화점에 갔다. 마침 영수증을 놓고 와서 과연 바꿔줄까, 내가 여기서 샀다는 것을 믿어줄까 걱정을 했으나 점원은 현금으로 내줬다. 이런 말과 함께. “다음엔 꼭 맘에 드는 구두를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앤드 해피 뉴 이어.”


말을 믿어주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자기가 참말을 하는 사람은 상대방 말도 믿어준다. 상대방 말을 안 믿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항상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동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교실 벽마다 커닝용 낙서가 빼곡했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우리가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줄기세포도 아니고 디지털도 아니고 사람이 사람 말을 믿을 수 있도록 정직하게 말하는 법이다. 이제부터라도 정직하게 말하자. 커닝 좀 하지 말자. 그리고 커닝은 치팅(cheating)의 잘못된 표현이다.

신상훈/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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