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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21 18:13 수정 : 2005.12.21 18:13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센터 공동소장

세계의창

세계무역기구 홍콩 각료회의를 앞두고, 언론들은 부자 나라들이 농업 장벽을 제거해 개발도상국들의 이해를 증진하는 합의가 있을지 여부를 내다봤다. 이에 답변하려고 굳이 각료회의 결과를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답변은 “아니오”다. 언론의 과대포장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같은 정치인들의 강렬한 언명에도, 개도국들이 농업 장벽 감축으로 얻을 건 거의 없다.

미국이 양모 보조금을 완전히 없애기로 합의했다고 치자. 세계 양모 공급의 20%를 차지하는 미국은 양모 생산을 40~50% 줄일지 모른다. 이런 조처는 세계 양모 가격을 10%쯤 오르게 할 것이다. 이는 양모 수출국인 남아시아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양모를 생산하지 않는 많은 개도국들은 돈을 더 내야 양모를 살 수 있게 된다. 일부 국가가 수혜자가 되고 일부 국가는 피해자가 되는, 일종의 재분배가 되기 쉬운 것이다.

무역 협상가들이 장벽을 없애려고 하는 설탕, 유제품, 감귤류 등 다른 모든 농업 생산물에도 이와 똑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부자 나라들의 농업 장벽 감축 효과를 가장 높게 보는 경제학자들조차 이를 통해 개도국이 얻는 이득은 국내총생산의 약 0.4%밖에 안 될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중국 경제의 3주간 성장치에도 못 미치는 규모다.

중국과의 비교는 적절하다. 개도국들은 부자 나라가 무역장벽을 낮추는 것에 맞춰 뭔가 양보를 해야 한다. 그것은 중국이 개발을 촉진하려고 현재 사용하고 있고, 과거 한국과 대만 등이 사용했던 산업정책들이다. 이들 나라 정부는 자국 산업들이 국제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적극적인 보호조처는 물론 신용보조를 비롯한 많은 혜택들을 자국 기업에 제공했다. 사실상 세계의 모든 부유한 나라들은 개발 초기단계에서 국가 개입을 경험했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 규정은 오늘날 개도국들에 대해 똑같은 권리를 부정하고 있다.

산업정책에 대한 선택권을 봉쇄하는 것 말고도, 미국식 특허 및 저작권을 존중하도록 요구하는 세계무역기구의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 협정’(트립스)은 개도국의 돈이 부자 나라로 직접 이전하는 메커니즘이 되고 있다. 18세기 말 영국은 증기기관 설계도가 영국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금지하고, 이 기술을 아는 엔지니어의 국외여행까지 제한하는 ‘정부기밀보호법’을 만들었다. 이 법을 무시하고 엔지니어와 설계도를 몰래 빼돌려 초기 섬유산업을 발전시킨 미국이 특허권과 저작권(특히 생명을 구하는 의약품과 관련해)을 존중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개도국들은 부자 나라의 농업 장벽 감축에서 얻을 이득보다 트립스로 잃을 게 훨씬 더 많다.

무역 장벽을 둘러싼 싸움에서 쉽게 눈에 띄는 승자는 의약 산업과 엔터테인먼트 및 소프트웨어 산업이다. 의약산업은 특허 보호로, 엔터테인먼트 및 소프트웨어 산업은 저작권 보호로 훨씬 많은 이득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거의 조명을 받지 않은 커다란 승자 집단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거대 농업 도매상들이다. 농산물을 직접 사고 파는 쪽들은 순 이득이 상대적으로 적더라도, 정치적 연줄을 갖고 농산물을 운송하는 이들 업체는 농산물 교역 증가로 상당한 이득을 챙길 것이다.

홍콩 각료회의가 부자나라들의 뜻대로 끝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도 개도국들은 세계무역기구 체제 아래에서 곡물 거래상들과 의약 업체나 엔터테인먼트 업체 사이에 이뤄질지도 모를 모종의 거래를 눈여겨 봐야 한다. 그 거래가 이뤄지면 개도국들은 확실한 패자가 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딘 베이커/미국 경제정책센터 공동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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