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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21 18:19 수정 : 2005.12.21 18:19

조홍섭 편집국 부국장

조홍섭칼럼

정보통신부는 연초에 인간 배아복제 성공을 기념하는 우표를 발행했다. 휠체어에 앉아 있던 환자가 일어나 가족 품에 안기는 연속동작을 그린 도안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이례적으로 기념우표까지 발행하도록 한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실은 1년도 되지 않아 사실상 폐쇄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우표는 이제 역설적인 희소 가치로 수집가들 사이에 값이 오르겠지만, 황 교수팀은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라 나락에 떨어질 처지에 놓였다. 그를 졸지에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것은 무엇일까?

그동안 너무나 깊이 우리의 뇌리에 박혀 있던 스타 과학자의 면모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그의 또다른 모습을 찾아보았다. 먼저 그에게선 성과주의에 대한 뿌리깊은 믿음을 발견할 수 있다. 마치 고도성장기의 우리나라처럼 그는 과정보다 결과에 집착했다. 장성익 〈환경과 생명〉 편집주간은 그를 가리켜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지난 6월 맞춤형 배아 줄기세포 논문을 〈사이언스〉 표지에 싣기로 결정한 직후, 아마도 인생의 절정기에 그는 관훈토론회에 섰다. 한 기자가 한국생명윤리학회가 공개질의한 난자 채취 등 윤리 문제에 왜 답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는 소모적인 논쟁에 시간을 뺏길 수 없다며 만일 10년 뒤에도 이런 비판이 계속된다면 “그때 모든 책임을 지고 여생을 거기에 맞춰 살겠다”고 말했다. 그 시기는 너무나 빨리 왔다. 획기적 연구성과가 나온 10년 뒤 그는 초기 연구과정의 ‘사소한’ 잘못을 털어놓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연구의 투명성을 위해 외부의 감시기구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이에 대해서도 그는 투명성을 너무 강조하다 엄청난 경제적 과학적 가치를 지닌 연구결과가 외부로 누출되면 어쩌냐고 되물었다. “(생명윤리) 논쟁에 나가기보다는 옷깃을 여미는 과학도의 자세를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는 말에 좌중은 숙연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과학도로서도 철저하지 못했다. 복제 소 영롱이, 복제 개 스너피, 광우병에 안 걸리는 소를 다룬 논문은 나오지 않았다. 그에게는 다른 과학자보다 언론이 훨씬 가까운 동료인 것 같다. 누리꾼들이 ‘매일 터지는 핵폭탄’이라며 허탈해했던 황 교수의 수많은 거짓말과 조작의 사례를 여기서 나열할 겨를은 없다. 별로 언급되지 않은 공동저자 문제를 보자. 올해 〈사이언스〉 논문에는 모두 25명이 공저자로 올랐다. 황 교수는 “실제 실험에 관여한 분은 절반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단지 난자를 확보하거나 기관윤리심의위를 통과하도록 도운 이들도 저자로 올렸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공동저자 부풀리기는 분명히 부도덕한 행위다. 과학연구윤리 전문가인 폴 프리드먼은 공동연구자가 믿을 만한지 확인해 보기 위해 심지어 가짜 표본을 보내 분석능력을 시험해 보는 행위조차 정당화된다고 말할 정도다.

황 교수는 세상의 넘치는 거짓말에 단지 몇 개를 보탠 것이 아니다. 모든 거짓말 가운데 과학자의 기만은 가장 중대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신뢰를 먹고 산다. 조작된 데이터는 후속 연구에 엄청난 혼란과 낭비를 부른다. 과학적 거짓말은 지식공동체에 대한 배반이다.

1995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조지프 로트블랫은 과학 기술자들한테서 “과학과 기술이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방식으로 쓰이는 더 나은 세계를 위해 일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의 ‘과학자들을 위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받자고 제안했다. 여러 나라의 젊은 과학자들이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 윤리 불감증이 극에 이른 우리 과학계만큼 이 선서가 필요한 곳이 있을까.

조홍섭 편집국 부국장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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