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10 18:01
수정 : 2019.06.1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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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키로 했다. 국내에서의 대응도 눈 앞으로 다가왔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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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5월25일 “게임사용장애도 질병”이라고 분류한 새 국제질병분류체계안(ICD)을 194개국 대표들의 반대 없이 통과시켰다. 게임의 중독적 사용 문제가 단순히 지나친 습관 문제가 아닌, 그냥 두면 안 되는 심각한 병으로 진행될 수 있고, 그런 사례가 전세계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에 모든 회원국이 의견 일치를 본 것이다. 이에 따라 보건당국을 중심으로 이번 결정을 국내에 적용하기 위한 현장적용연구 등의 준비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물론 게임은 놀이문화의 영역이자 콘텐츠 산업 아이템이므로, 이런 결정이 게임산업이나 게임이용 문화에 미칠 영향 또한 다뤄야 할 문제다. 하지만 이미 국내에선 ‘게임산업 진흥’을 위한 법에서조차 국가의 게임 과몰입과 중독의 예방치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게임업계나 정부는 게임 과몰입과 중독 예방치유 업무를 건강체계에서 보다 의학적·과학적으로 접근하게 함으로써, 게임산업이 좀 더 균형있게 성장하는 계기로 삼으면 된다.
그러나 게임업계와 게임산업 친화적 언론매체, 관련 학계, 그리고 정부 부처까지 합세하여, 세계보건기구의 결정 자체를 부정하며 소모적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는 ‘진료 시 환자 상태에 맞춰 적절하게 입력할 수 있는 게임사용장애라는 질병코드가 하나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상황의 본질과는 무관한 것들이어서 안타깝다.
게임업계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건강 전문가에게 “게임사용장애 질병 등재의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애초에 토론을 목적으로 하는 것 같지 않다. 이윤 추구를 우선으로 하는 게임업계가 “의료계가 없는 환자를 만들어 이익을 추구하고자 한다”고 건강 전문가들을 싸잡아 비판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고 억지스럽다. 게임 과몰입의 원인이 게임이 아니고, 부모의 기대와 통제, 학업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주장은 그럴듯하나, 그래서 ‘게임 과몰입을 질병으로 등재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존하는 문제를 그대로 방치하자는 무책임한 주장이다.
나아가 원인이 아닌 심각한 기능이상 상태를 기준으로 진단하는 정신행동건강문제의 진단분류체계에 대한 몰이해다. 가장 과장된 문제제기 중 하나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을 게임 좀 한다고 정신질환자로 만들어 평생 낙인을 찍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신질환 치료에 대한 편견을 노골적으로 조장하면서, 정신건강 서비스를 적기에 받을 수 없도록 만드는, 비윤리적 주장이기도 하다. 더구나 숙련된 임상가에 의해 심각한 기능이상이 확인된 경우에만 ‘게임사용장애’ 진단을 내리도록 하고 있는 세계보건기구의 기준이, 대다수 일반 사용자에게 적용될 일은 없다.
또 우려스러운 것은 게임업계의 지원과 게임의 긍정적 가치 강화라는 이해관계를 배경으로 조사나 연구를 수행한 일부 연구자들이 게임사용장애의 진단체계 등재를 반대하는 논리를 설파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심각한 연구윤리 위반의 소지까지 내포하고 있다.
세계 어디에도 세계보건기구가 결정한 국제질병분류체계를 게임업계와 정부 부처가 나서 소모적 공방으로 몰고 가는 나라는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게임업계는 오히려 이번 결정을 계기로 건강, 청소년, 소비자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력하여, 국민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게임을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 나서면 된다. 특히 보건복지부는 좌고우면 말고 건강서비스 체계 내에서 ‘게임사용장애’ 등 행위중독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한 서비스 개발과 의학, 간호, 보건, 복지, 심리 등 다학제 인력에 대한 교육과 훈련체계를 준비하면 된다.
국제질병분류체계는 질병과 건강 위험요인, 환경요인을 총망라하여, 적절한 건강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하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적 변화 중 하나는 행위중독 영역의 신설이다. 현대 사회에서 디지털 기기와 콘텐츠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일상생활 기능이 떨어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란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전세계가 같은 기준으로 이런 현상의 특성을 파악하고 크기를 가늠하며 이를 근거로 효과적인 예방과 치료법을 개발하도록 하는 것이 ‘게임사용장애’ 진단체계 등재의 핵심이다. 세계보건기구 결정의 핵심은 ‘게임’ 자체에 대한 가치판단이 아니라, 그것이 소수라도 ‘게임을 중독적으로 사용하여 일상생활기능을 잃어버린 사회 구성원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셧다운 제도나 피로도 시스템, 자녀게임사용 부모고지 등의 제도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법적, 또는 자율적으로 시행되고 있기에 ‘게임사용장애’의 질병코드 등재로 인하여 여타의 게임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것이라는 주장은 과도하다.
사실 확률형 아이템이나, 선정적 게임광고 등에 대한 규제의 목소리는 ‘게임사용장애’ 질병코드 등재와는 무관한 게임업계의 지나친 이윤추구 행태가 촉발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알코올사용장애, 카페인사용장애 등은 이미 질병코드에 등재되어 있으나, 어떠한 법적 규제나 죄악세 등도 검토조차 되고 있지 않다. 게임산업에 대한 규제나 게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걱정이라면, 그것은 게임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함으로써 해결할 부분이다. 게임업계가 게임산업이 온갖 규제로 위축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두려움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게임산업과 국민의 건강이 공존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를 기대한다.
이해국
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이슈논쟁] 게임장애는 질병인가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달 25일(현지시각) 스위스에서 열린 총회에서 ‘게임사용장애’의 질병코드 등재를 승인함에 따라, 국내에서도 이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뜨겁다. 이번 세계보건기구의 결정은 2022년부터 우리나라를 포함한 194개 회원국에 적용된다. 이에 반발한 게임업계 쪽은 지난달 29일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열어,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대로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등 보건의학단체들은 10일 이번 결정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미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게임은 마약 등과 동일하게 취급되어선 안 된다는 쪽과 게임장애로 인한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는 쪽이 팽팽하게 맞서는 중이다.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데 대해 각각 찬성과 반대 입장을 밝혀온, 두 교수의 글을 나란히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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