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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22 17:49 수정 : 2005.12.22 17:49

유레카

생산 현장의 비효율과 조직의 관료화로 경제 건설의 동력이 급격히 떨어지던 1970년대 초 북한은 ‘속도전’ 개념을 도입한다. “역량을 총동원해 사업을 최대한 빨리 밀고나가면서 그 질을 가장 높은 수준으로 보장하기 위한 사회주의 건설 기본 전투형식이다.” 속도전은 이렇게 전개된다. “일단 시작한 일을 낮잡지 않고 이악하게 달라붙어 부리나케 해제끼며 쉼 없이 새로운 혁명과업 수행에로 돌진해나가는 전격전의 원칙과 사업에서 중심고리에 힘을 집중하여 문제를 하나하나씩 모가 나게 해가는 섬멸전의 방법으로 ….” 70년대 초 김일성 지시로 창설된 ‘4·25 돌격대’는 속도전의 효시다.

비슷한 시기 남쪽에서도 ‘쿵짝, 쿵짝, 새벽종이 울렸네♬’ 노래와 함께 속도전을 재촉하는 운동이 전국을 휩쓴다. 이 노래는 궁벽한 산골에서부터 도시의 뒷골목, 공장 기숙사에서 학교 교실에까지 울려대며 그 단조로운 비트로 뒤통수를 쳐댔다. 70년 4월의 일이었으니, 박정희와 김일성이 거의 동시에 도입한 셈이다.

소와 말처럼, 속도전의 희생자는 노동자·농민이다. 살인적인 저곡가 속에서도 농민은 그저 소출을 늘려야 했고, 노동자는 밤낮없이 미싱을 돌리고 또 돌렸다. 재벌 성장과 수출 신장 그리고 고도성장을 이끈 것은 바로 이들이었다. 정부는 긴급조치 등으로 반발을 막았다. 속도전의 겉면은 화려하다. 그러나 내용은 부실 그 자체. 성수대교가 내려앉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재벌의 부실이 주식회사 대한민국을 위협했다. 결국 국제통화기금에 경제주권을 내줬다.

이제 정보화 사회는 전혀 다른 속도전을 채택한다. 기하급수적 가속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늘은 깊다. 10년 할 일을 불과 1년 만에 하려다 영웅에서 사기꾼으로 전락한 일이나, 속도 때문에 조작된 정보를 유통시키는 행태가 두드러지는 것은 새 속도전 사회가 부를 디스토피아의 예고편 같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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