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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24 17:42 수정 : 2019.06.25 16:21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국제경제학회 회장

“중국은 국영기업, 민간기업, 학자, 유학생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미국의 정보, 연구개발, 혁신, 기술 등 지적자산을 빼가려는 장기적인 계획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오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미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우리 앞엔 붉은 경고등이 번쩍거리고 있다.” 크리스토퍼 레이 미국연방수사국(FBI) 국장이 지난 4월 미국외교협회 강연에서 던진 말이다. 같은 시기,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미국 텍사스의 앤더슨 암센터가 중국 정부를 위해 스파이 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과학자 3명을 해고했다. 의학 분야의 거대한 연구자금을 관리하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미국 정부의 예산지원을 받는 대학, 연구소에서 해외 기술 유출 혐의가 있는 연구자들을 색출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음은 첩보영화의 한 장면이 아닌 실제 상황이다.

4월이면 미국과 중국이 워싱턴과 베이징을 오가며 진행해온 무역협상이 막바지로 치닫던 그때다. 무역전쟁은 서로에게 상처만 줄 것이기 때문에 타협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는 배반되었다.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다. 지난해 3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겨냥한 관세폭탄 카드를 꺼내들었을 때 시장은 “트럼프 쇼”라고 했다. 그로부터 1년, 그리고 더 많은 날들이 흘렀다. 폭탄은 더 커졌고, 무역에서 투자·기술·과학·인력교류 등 전방위로 전선은 확대돼갔다. 미-중 무역전쟁은 곁가지이고, 미-중 격돌의 본질은 패권경쟁이다.

중국을 향한 무역전쟁의 폭탄을 쏘아 올린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트럼프 뒤에는 “더 이상 중국을 이대로 둘 수는 없다”는 미국의 초당적인 합의가 있다. 그런 미국의 결기를 부추긴 것은 시진핑 주석 등장 이후 중국의 공세적 진격이다. 시 주석은 “태평양은 광활해서 미국과 중국이 나누어 가질 수 있다”고 야심을 드러내었다. 중국은 거대해진 경제력을 기술력·군사력으로 투사하려는 중국몽으로 21세기 패권국가가 되려는 야망을 더 이상 숨기지 않는다. “공산체제인 중국의 대국화가 세계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화평굴기’는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에 걸맞은 대접을 하라”는 ‘신형 대국관계’로 대담하게 전환됐다. 중국은 그들이 설정한 핵심이익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집요하게 관철하고 있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무역보복, 중국에 취항하는 모든 외국 항공사는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분류하라는 요구, 국제규범을 무시한 남중국해의 군사화 등 사례는 쌓여가고 있다.

중국의 진격을 가능케 한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었다. 21세기가 시작될 때 미국 경제의 10% 규모이던 중국은 이제 65% 규모로 치고 올라왔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은 중국의 초고속 질주를 가능하게 한 고속도로였다. 그 길은 미국으로만 향하고 중국으로는 막힌 길이었다. 미국은 이제 와서 중국에 그 고속도로 진입을 허용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자신이 설계하고 확장하는 데 가장 많은 지분을 투자해온 고속도로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그와 생각을 같이하는 국가들에만 진입을 허용하는 새로운 길을 만들려고 한다.

중국이 더 개방되고 개혁되리라는 서방의 기대는 배반되었다. 인터넷이 정치적 자유를 가져다주리라는 기대 역시 빗나갔다. 시진핑 등장 이후 공산당은 전면에 나서고 민간 분야는 확연히 후퇴했다. 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주의 체제의 시장을 도입하는 유연성을 보였던 중국은 안정과 패권을 위해 공산당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념성을 보이고 있다. 디지털 기술혁신은 중국을 조지 오웰의 <1984년>을 방불케 하는 통제사회로 변모시키고 있다. 공산당 독재국가이지만 세계 경제와의 연결고리가 강해지면 중국이 정치적으로 유연해질 것이라는 기대로 가득했던 중국 포용론은 폐기됐다.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리셋하려고 한다. 중국의 최대 수출시장, 핵심기술 공급처이자 인력 양성과 과학기술 학습 기지였던 미국은 중국과의 연결고리를 끊으려고 한다. 미국에서의 중국 자본의 인수합병을 통한 기술 획득은 경계와 제재의 대상이 되었다. 중국의 기술굴기를 대표하는 화웨이에 미국 기업은 기술 공급을 차단하고, 미국 대학은 산학협력을 중단하고 있다.

미-중 대격돌은 구조적 경기하락세가 이미 진행중인 중국에 치명적인 위기 상황이다. 중국의 부상을 가능케 했던 글로벌 가치 사슬은 분절화될 것이다. 세계 기업들의 중국 탈출, 중국 회피는 이미 시작되었고 가속화될 것이다. 세계화의 상징이었던 애플 아이폰의 중국 생산기지는 축소될 운명이다. 미-중 격돌이 오히려 중국의 기술 자립의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모방창신’으로 혁신을 추구해온 중국이 ‘모방’할 대상에의 접근이 어려워진 열세를 극복해야만 가능하다. 디지털 대전환기에 중국의 기술굴기를 실현시켜줄 것으로 기대했던 5G, 인공지능(AI)은 세계와 연결되지 못하면 이류에 머물 뿐이다. 확대 지향의 상승곡선을 그려왔던 중국은 축소 지향으로의 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 국면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중국 공산당 체제의 정당성은 위협에 직면한다. 지구전을 각오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트럼프 재선 여부를 불문하고 미국의 대중국 강경 기조는 계속될 것이다. 공산당 체제를 위협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경제적 자유를 허용했던 ‘중국 특색 사회주의’는 중국의 미래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이슈논쟁] 미-중 패권경쟁

오는 6월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도 예고돼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전개된 양국 간 무역분쟁과 관련해 진전된 협상이 오갈지 주목된다. 더 나아가 무역분쟁으로 시작된 거대 강국 간 충돌의 본질은 패권경쟁에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어, 향후 전개되는 상황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세기 지구촌 강국 미국은 다시 한번 ‘패권’을 둘러싼 중대한 시험대에 오른 모양새다. 이번 상대는 오랜 침체를 딛고 ‘굴기’하고 있는 중국이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전병서 경희대 차이나 엠비에이 객원교수가 각기 미국과 중국의 이번 격돌이 갖는 의미를 분석,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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