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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26 18:13 수정 : 2019.08.26 19:08

신희석
연세대학교 법학연구원·전환기정의워킹그룹 연구원

오는 8월30일은 유엔에서 지정한 세계 강제실종 희생자의 날이다. 공권력이 사람을 구금하거나 납치한 후에 구금·납치 사실을 부인하거나 실종자의 생사·행방을 은폐하는 강제실종은 중대한 인권침해이며, 한국도 강제실종 사건의 진실규명과 처벌, 피해자 구제 등을 규정한 유엔 강제실종협약(강제실종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협약)을 조속히 비준하고 국내법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의 악명 높은 ‘밤과 안개’(Nacht und Nebel) 명령에 따라 나치 점령지에서는 저항세력이 한밤중에 독일로 끌려가 ‘안개’가 되었다. 전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소는 ‘밤과 안개’를 집행했던 빌헬름 카이텔 원수를 전쟁범죄와 반인도범죄로 사형에 처했다. 아서 쾨슬러의 소설 <한낮의 어둠>의 배경이 된 소련 스탈린의 대숙청에서도 반혁명, 간첩 혐의로 수백만명이 굴라크 수용소에서 사라졌다.

1970년대 좌우 대립이 극심했던 중남미에서는 군사정권이 반체제 인사들을 조직적으로 납치·살해하여 아르헨티나에서만 3만명의 ‘실종자’(desaparecidos)가 생겼다. 1980년 아르헨티나 등의 실종자 사태에 대처하기 위하여 세워진 유엔 강제적·비자발적 실종 실무그룹(WGEID)에는 현재 92개국 4만5811건의 사건이 계류 중이다.

2006년 유엔 총회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강제실종협약을 채택했다. 유엔 강제실종협약은 강제실종의 법적 정의, 국내형법상 처벌과 피해자의 효과적 구제, 강제실종 우려 시 송환·인도 금지 등을 규정하고 있다. 협약 이행의 감독을 위하여 당사국들이 선출하는 10인의 독립 전문가로 구성된 강제실종위원회를 두고 있다.

지금도 많은 경찰국가에서는 영장이나 법관의 감독 없는 구금과 고문, 처형이 빈번하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과거 일제 강점기의 강제동원·강제노동과 일본군 ‘위안부’, 독재정권의 김대중 납치, 삼청교육대, 형제복지원 사건은 강제실종에 해당될 수 있다.

정부는 2018년 5월 강제실종협약 가입을 결정하였으며, 국회의 비준동의도 무난해 보인다. 한편 협약 비준에 수반되는 국내법 정비를 위해서는 기존 형법의 일부 개정과 포괄적 특별법의 제정 방안이 있는데, 법무부 정책연구 보고서(UN 강제실종협약의 가입을 위한 국내법적 절차 검토 최종보고서)는 협약의 충실한 이행을 위해 후자를 권하고 있다.

물론 국내법 정비에 시간이 걸릴 경우, 유엔 강제실종협약을 먼저 비준한 다음에 이행입법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국은 2002년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을 비준하고, 2007년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라는 특별법을 제정한 전례가 있다.

유엔 강제실종협약을 비준하면 강제실종위원회의 관여로 국내법 정비에 속도가 붙고, 협약의 취지가 더 잘 반영될 수 있다. 2009년 협약을 비준한 일본의 경우, 기존 형법 규정으로 충분하다는 논리로 국내법 정비를 안 하여 위원회의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은 오히려 위원회와 보조를 맞춰 시효, 주권면제 등을 제한하는 선구적 내용을 이행입법에 담을 수도 있다.

한국이 강제실종협약을 조기비준하면 2021년 당사국 총회에서 강제실종위원회 선거에 한국인 후보를 낼 수 있다. 현재 강제실종위원회 위원 10인 중 아시아 출신은 일본인밖에 없는데, 한국인도 선출된다면 지리적 배분이 개선돼 강제실종 금지가 보편적 인권임이 강조될 수 있다.

한국은 강제실종협약 비준 이외에도 이미 비준한 사회권규약, 아동권리협약, 장애인권리협약의 위반 시 개인 진정을 허용하는 각 선택의정서들의 비준에 나설 필요가 있다. 이는 인권 변호사 출신 문재인 정부의 역사적 기회이자 책임이며, 국회도 결의안 채택 등으로 정부에 비준동의안 제출을 촉구할 것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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