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인도주의적 원조라는 것이 정치적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인권이나 정치적 활동과 너무 많이 혼동해 대하는 태도는 북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국경 없는 의사회’는 배고픔과 기아의 희생자인 북한 사람들을 10년 동안 돕고 있다. 북한에서 1000곳 이상의 건강센터에 약품을 공급하고 아이들을 위한 급식센터 60곳을 감독하면서 의사회는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을 만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사가 자신의 환자를 직접 돌보는 것과 의사회와 같은 독립적인 의료 엔지오(NGO)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구호의 손길을 건넬 수 없을 때는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다. 이런 인도주의적 활동은 먹을 것을 취할 수 있는 권리와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돌볼 권리와 같은 인권의 가치와 기본 원칙에 연결되어 있으나 순수한 인권활동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국경 없는 의사회는 12월 초에 서울에서 개최된 북한인권 국제대회에 참석하여 북한 사람들을 위한 활동과 관련한 증언을 했다. 여전히 먹을 것이 없어 고통받는 많은 북한 사람들이 중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고, 그들의 생존을 위해서 자신들의 조국과 가족들을 남기고 떠나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처럼 먹을 것을 구한다는 것이 범죄가 되어 버리고 중국에서 늘 북송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생활하고 있다. 또 도망다니며 억압당하면서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전세계에 있는 사회 폭력의 희생자들과 같이 의사회의 구호를 받을 자격이 있으며, 우리 활동의 근간은 직접적이고 자유로운 그들과의 접촉에 있다. 중국과 북한에서는 이러한 자유로운 접근에 대한 문제가 매우 근본적이고 시급한 문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배고픔의 희생자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접근에 대해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여타의 정책들과 정치적 혹은 종교적 의제만을 지지한다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북한 사람들은 ‘정치적 존재’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존엄성을 회복하려는 기본적인 권리가 있는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다. 어떠한 인간도 고통을 받고자 태어나지는 않으며, 그들의 고통은 지금도 여전히 가혹하다. 인도주의적 원조라는 것이 정치적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인권이나 정치적 활동과 너무 많이 혼동해 대하는 태도는 북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실제로 세계 도처의 여러 나라에서 이러한 상황들이 구호활동가의 활동 가능성을 상당히 좁히는 결과를 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북한 사람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이슈들을 정치적 논의만으로 축소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국 정부가 한국으로 오기를 원하고, 올 수 있는 북한 사람들에게 많은 지원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 사회에는 낙인·소외·거부 요소들이 남아 있다.간혹 북한 관련 이슈에 대해서 의료 전문가로서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정치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국경 없는 의사회에서는 여전히 의료 전문가들이 적절하고 충분한 구실을 할 부분이 있다고 믿는다. 다른 어떤 나라보다 한국 사람들은 몇 세대에 걸친 그 깊은 고통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다음 세대로 이것을 물려주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질뒤앵 블랑샤르/국경없는 의사회 한국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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