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26 22:28
수정 : 2005.12.26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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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단국대 교수·기생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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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황우석 교수와 노성일 이사장이 인터뷰를 통한 진실공방을 거듭하고 있을 때, 한 누리꾼이 이런 댓글을 올렸다. “황우석은 눈빛이 당당한 반면, 노성일은 눈이 작아서 눈빛이 안 보인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대번에 알 수 있다.” 그의 말마따나 부리부리한 눈을 부릅뜨며 거침없이 말하는 황 교수는 무척이나 당당해 보인 반면, 작은 눈으로 이따금씩 울기도 하면서 인터뷰를 하는 노 이사장은 뭔가를 숨기는 것 같았다.
귀와 입이 듣고 먹는, 혹은 말하는 기능으로 평가되는 반면, 눈은 본래의 기능보다 미적인 잣대가 더 우선되는 기관이다. 얼굴에서 눈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는 의견이 갈리지만, 대략 80% 이상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얼굴의 모든 면이 완벽하다는 장동건도, 그의 아름다운 눈 대신 내 눈이 달려 있다면 <태풍>의 주연은커녕 단역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사회의 외모 지상주의는 사실상 눈 지상주의다.
초등학교 시절, 전교에서 가장 눈이 작았던 내 별명은 새우눈이었다. 때로는 ‘와이셔츠 단춧구멍’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눈 때문에 가장 마음고생을 한 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인간의 눈이 저리도 작을 수 있다는 게 못내 신기했던 음악 선생은 나에게 ‘왕눈이’라는 당치도 않는 별명을 붙여놓고선 시시때때로 불러댔다. 그것만으로도 심히 모욕적이었지만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아서, 눈을 키워주겠다며 틈만 나면 내 눈을 찢는 시늉을 했다. 아이들은 그때마다 와 하고 웃어댔고, 난 그 상황이 부끄러워서 눈이 아픈 것도 느끼지 못했다. 당연하게도 난 매주 한번씩 돌아오는 음악시간이 지옥 같았는데, 나중에 그는 날 유심히 보면서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내가 열심히 찢었더니 눈이 좀 커진 것 같아.”
그 뒤에도 눈 때문에 겪어야 했던 수모는 줄줄이 이어진다. 나한테 “넌 왜 그렇게 눈이 작냐?”는, 답을 전혀 알 수 없는 질문을 해댄 친구도 있었고, 내가 미팅에 나가서 번번이 차인 것도 사실은 다 눈 때문이었다. 유유상종이란 말처럼 내 주변에는 눈이 작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들 작은 눈 때문에 애환을 겪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한 친구의 회고담. 조회 시간에 교장이 훈시 도중 “나라를 구한 장군들은 대개 눈이 크고 부리부리하고, 간신은 눈이 작다”는 말을 했다. 조회가 끝나고 교실로 들어가는데 한 친구가 자신을 세게 밀면서 “비켜! 이 간신아!”라고 말했다는 거다.
서두에서 언급한 대로 눈이 작은 사람은 뭔가 숨기는 게 있어 보이며, 텔레비전이나 만화에서 간신을 묘사할 때 눈을 작게 그리는 것도, 그 교장이 덮어씌운 ‘간신’의 혐의도 거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눈 작은 사람들은 대개 정직하다. 눈동자가 안보여 뭔가를 숨기는 것처럼 보이니 남보다 정직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었던 거다. 나 역시 진작 이 사실을 깨닫고 정직하게 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지인들로부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믿는다”는 말을 들으며 살고 있다. 눈이 크다는 것만 믿고 거짓말만 일삼는 사람을 생각하면, 내 눈이 작은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 이 글은 노 이사장의 말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게 결코 아니며, 단지 주위의 눈 작은 이들을 편견 없이 대해 달라는 호소일 뿐이다.
서민/단국대 의대 교수·기생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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