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27 18:27
수정 : 2005.12.27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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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한신대 교수ㆍ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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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망대
며칠 전 중국이 자랑하는 개방도시 선전(심천)에 다녀왔다. 선전은 절망을 딛고 휘황한 기적을 일구어낸 도시다. 1970년대 말, 가난한 선전은 ‘사회주의’ 중국의 인민들이 ‘제국주의’ 영국이 지배하는 홍콩으로 탈출하는 통로였다. 당시 광둥성의 지방 간부들은 홍콩에 대한 완충지대로 선전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건의했고,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은 속히 ‘혈로’를 뚫으라(要殺出一條‘血路’來)고 화답했다. 그리하여 1980년 선전 특구가 만들어졌고, 이후 2004년까지 연평균 28.0%의 고도성장을 달성했다. 2004년 선전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6만위안에 이르렀다. 이는 7800달러에 해당하며, 한국 수도권 지역의 구매력 수준을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제 선전은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선전의 약진을 보면서 우리는 한반도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북한 핵 문제 해결이 지연되고 있는 사이, 다시 위폐와 마약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미국은 북한이 자금을 관리하고 있는 마카오 은행 방코델타아시아와의 거래를 금지했고, 추가적인 제재조처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이 ‘불법행위’를 단속하겠다는 방침을 확고히 하면, 핵 문제와 위폐 문제를 분리하려는 한국 정부의 노력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북한으로서는 지난 9월의 제4차 6자회담 공동성명 이후 속히 ‘혈로’를 뚫었어야 했으나, 또 시간을 놓쳤다. 이제 북한도 6자회담과 금융제재를 연계하였으니, 북-미관계는 다시 경색될 수밖에 없다. 개성이 ‘개방의 창구’, ‘개혁의 시험장’이 되는 것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선전의 경쟁상대는 상하이다. 선전에서 한국은 먼 나라인데, 최근 홍콩에서 벌어진 농민시위 때문에 관심이 높아졌다. 시위대들의 조직적이고 강력한 움직임은 선전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그것이 꼭 동의와 존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선전이 가지고 있는 모순은 한국 농민이 처한 곤경을 뛰어넘는다. 1979년 선전 인구는 31만명이었는데, 2004년 말 상주인구는 600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 그 중 선전에 호적을 가진 인구는 165만명에 불과하다. 농촌에서 흘러 들어와 잠정적으로 체류하는 인구가 600여만명에 이른다. 이들은 주택, 교육, 의료 등에서 냉정한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
한국 농민이 시장 개방과 보조금 삭감에 반대하고 있으나, 중국 농민은 이러한 상황에조차 놓여 있지 않다. 농민의 이익을 대변할 통로도, 삭감할 보조금도 변변하지 않다. 개방화 속에서 지역·계층 격차는 엄청나게 확대되었고, 중국의 농민은 밑바닥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곤란에 빠진 농민들조차 격한 대립은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중국인들에게는 지난 세기 격변 속에서 치른 희생과 대가가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비행기로 날아온 한국 농민들의 격렬한 항의를 ‘이국적’인 것으로 바라본다.
선전에도 황 교수 사건은 계속 알려졌다. 과학자가 과학을 조작했다는 사실도 충격이지만, 이를 둘러싼 언론의 행태도 가관이었다. 중국의 언론은 일정한 통제 상태에 있고, 합리성의 수준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방송국만 해도 2000여개에 이르고, 언론기관들 사이에 일정하게 영역별 분업이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처럼 나라 전체가 온통 하나의 문제에 매달려 격하게 대립하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선전에서 본 한반도는 안으로만 향하는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이슈보다는 권력이, 타협보다는 투쟁이, 반대파에 대한 격한 적개심이 충만해 보였다.
이일영/한신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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