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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28 18:29 수정 : 2005.12.28 19:03

아드난 무살람 팔레스타인 베들레헴대 인문학부 교수

세계의창

2005년 6월24일의 이란 대선 결선투표는 예상치 못한 인물,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테헤란 시장을 이란 정치의 전면에 등장시켰다. 그는 빈민층 등 “잊혀진” 대중의 투사로 여겨졌다. 아마디네자드는 61.7%를 득표했고, 쉽게 승리할 것으로 예상된 유명 정치인이자 실용주의자이자,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은 패배했다. 개혁파 후보 등은 초보수적 기구인 혁명수호위원회와 전문가 위원회, 혁명수비대, 민병대가 새 강경파 대통령인 아마디네자드를 지원했다고 비판했다. 어떤 이들은 새 대통령이 강경파 혁명수비대와 바시지 민명대가 내세운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다른 이들은 일반인들이 아마디네자드를 자신들의 투사라고 느끼며 적극 투표에 나섰기 때문에 팽팽한 균형상태를 깨고 아마디네자드가 승리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163만6천㎢의 이란은 이라크와 걸프 지역의 아랍국가들과, 중앙아시아, 터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이 점점 더 유혈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는 이 중대한 시기에 이런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이란은 미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의 거대한 파워게임에 휘둘리기 쉽게 되었다.

변덕스럽고 논쟁적인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이란 정치에서 초강경 보수주의의 승리를 상징했고, 전임 대통령 모하마드 하타미나 개혁파 의회가 추진했던 개혁 시도의 사망을 의미했다.

1997년 5월 대선에서 모하마드 하타미가 권력을 잡자 1979년 이란 이슬람공화국이 들어선 이래 처음으로 강경 보수파가 패배한 데 대해 이란 전역과 세계에서 큰 희망과 기대가 일었다. ‘데탕트’, ‘문명간의 대화’ 가 개혁파 정치인들의 화두였다. 그러나, 새 정부가 내놓은 수많은 개혁정책은 대부분 감독기구인 헌법수호위원회와 전문가 위원회 내의 초강경 보수 정치가들에 의해 거부됐다. 이들 감독자들은 결국 모든 개혁 시도들을 ‘비 이슬람적’이라는 이유로 좌절시켰다. 이렇게 하타미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개혁의 시대는 비극적으로 저물었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미국은 하타미 대통령이 추진한 개혁의 절정기에조차도 이란이 핵무기 프로그램 등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려 하고, 전략 미사일 확산 노력을 하고 있으며, 전쟁으로 찢긴 이라크에 개입하고,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의 이슬람 지하드, 하마스 등 반 이스라엘 단체들을 무장시키고 훈련시킨다는 이유를 들어 계속 이란을 비난했다. 현 아마디네자드 대통령도 마찬가지 비난을 받고 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최근 연설에서 “이스라엘 국가를 없애야 한다”고 요구했다가 서방 강대국들과 유엔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란 최고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해 아마디네자 등 이란 지도자들은 계속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 왔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도 계속 미국과 세계를 향해 이란 핵 프로그램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긴급히 그것을 제거해야만 한다고 상기시키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곧 “전제적인 종교적 광신도 그룹이 통치하는” 핵 보유국가가 될 것이라고 여긴다. 이스라엘인들은 “이란이 우라늄 농축을 재개하면 핵무기를 만들기까지 몇달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유엔 국제원자력기구(IAEA) 의장의 발언를 인용한다.어떤 이스라엘인들은 대통령이 공공연히 이스라엘을 없애야 한다고 요구하고 2차 세계대전 동안 홀로코스트가 일어난 적도 없다고 말하는 이 “폭력적인 이슬람 파시스트 국가”에 대항해 군사작전을 벌여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 발전소를 폭격하려는 계획을 밀고 나간다면 이란은 가만히 서서 당하고만 있겠는가? 아니면 자신들의 장거리 전략 미사일로 이스라엘을 보복공격하면서, ‘너 죽고 나 죽자’식 유혈 갈등의 불길이 이 지역 전체를 집어삼키는 전쟁의 신호탄이 될 것인가?

아마디네자드는 1979년 11월4일부터 1981년 1월20일까지 계속된 테헤란 미국대사관 인질사건에서 중심 역할을 한 대학생 그룹의 지도자였다는 비난도 받았다. 이 사건은 1980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카터 대통령이 패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아마디네자드는 1980년대 반체제 교수들과 학생들이 숙청당하게 만든 학생 그룹의 일원이었다는 비난도 받아왔다. 그러나, 이런 모든 비난들이 사실인지는 더 많은 조사를 해봐야만 하며, 아직은 단정할 수 없다.


한편,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지구촌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어려운 싸움을 해야 한다. 하타미는 전세계 무슬림과 비무슬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많은 발걸음을 내디뎠다. 많은 세계인들은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이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하타미가 힘들여 만든 다리를 불태워버렸다고 여긴다. 하타미 시절 미국과 이란 사이에는 간접적으로나마 협력의 다리가 건설됐고, 이란은 미국이 자국에 적대적인 두 세력, 즉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제거했다고 여겼다. 게다가 이라크를 안정시키기 위해, 미국은 이라크이슬람혁명최고평의회와 그 산하 바드르 민병대 등 이라크 시아파 지도자들이 이란에 종속돼 있는데도 다수파인 시아파와 협력했다.

1979년 이후 계속 대립해온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앞으로 몇주 안에 더욱 악화될 것이다. 미국은 이미 이란을 이라크 안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외부 요소로 묘사했고, 부시 대통령은 ‘미국은 이란이 이라크의 정치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란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가 미국이 지원하는 중동평화계획인 중동평화 로드맵을 망치도록 요구했다고 본다. 강경파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하메네이는 이스라엘을 비난해 왔으며, 이 지역을 이스라엘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아랍-이스라엘 갈등의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해 왔다. 미국과 이란 사이에 또는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에 군사적 대결이 일어나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한편으로 이란의 야심찬 핵 프로그램을 막으려는 국제원자력기구와 독일·프랑스·영국 등 유럽 국가들, 미국의 강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우라늄 농축을 통해 국내에서 핵 연료를 생산할 것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아드난 무살람/팔레스타인 베들레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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