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29 18:26
수정 : 2005.12.29 18:26
유레카
올해는 인권 논의가 특별히 ‘소란스레’ 제기된 해였다. 인권보다는 국익과 안보를 앞세웠던 네오콘들이 이 문제를 공격적으로 쟁점화한 탓이었다. 이들은 침략전쟁의 명분이 약해지자 지구적 차원에서 인권과 민주주의 공세를 펼쳤고, 한국과 일본 등 세계의 덩달이들이 호응했다. 이들은 인권으로 이라크 침략을 합리화하려 했고, 중앙아시아의 잇따른 친미정권 등장을 민주주의의 확산이라고 자찬했다. 여세를 몰아 북한 인권법 제정 등 대북한 인권 공세를 펼쳤다. 사학자 홉스봄이 경고한 인권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렸던 한 해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보편적 윤리에 회의를 표시하면서, 인류가 전쟁에 광분한 이유로 문화적 우월성에 대한 맹신을 꼽았다. 실제 나치즘과 파시즘을 포함한 서구 제국주의는 ‘열등한’ 인종과 문화를 절멸시키려 했다. 2차 세계대전 뒤 유엔인권위원회는 문화적 상대성, 민족적 연대의 가치를 포괄하는 공동의 윤리적 준거를 마련하기로 하고 중국의 유학자 장펑춘, 레바논 철학자이자 아랍연맹의 대변인이었던 말리크, 유대계 프랑스 법학자 카생을 기초위원으로 선임했다.
당시 프랑스 신학자인 마리탱은 “문화와 문명이 다르고 상반된 영성과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정신적 합의에 이를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인류가 발전시켜온 인권개념의 공약수를 추려 ‘세계인권선언’을 성안했고, 유엔은 1948년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했다. 이 선언 가운데 인권 제국주의가 흔히 무시하는 부분이 민족적 연대의 가치다. 인권의 보편성을 막무가내로 앞세워, 문화적 상대성을 무시하고 다른 공동체에 대한 해체와 길들이기를 시도한 것이다. 인권이 제국주의자의 무기로 활용되는 현실에서, 인권 연구의 고전 <세계인권사상사>(미셸린 이샤이 지음, 조효제 옮김)의 출판은 인권 지킴이들에겐 작은 위안이었다.
곽병찬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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