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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12 18:08 수정 : 2019.11.13 14:24

전우용 ㅣ 역사학자

‘좋은 반찬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며, 좋은 모임은 부부와 자녀 손주들이라.’(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 추사 김정희가 말년에 쓴 글귀이다. 현대 한국인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추사를 만나게 된다면, 그와 대화하기는 어렵지 않겠지만 식사를 함께 하기는 아주 어려울 것이다. 그가 늙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현대 한국인의 입맛도 그의 입맛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 요리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향신료 겸 채소가 양파다. 양파는 삶고 지지고 볶고 튀기는 등 모든 조리법에 어울릴 뿐 아니라, 날것으로 먹거나 장아찌로 만들어 먹거나 생즙을 내어 마시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한국인들이 양파를 즐겨 먹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중국에서 유래된 것들에는 이름 앞에 ‘호’(胡) 자를 붙이고 일본에서 유래된 것들에는 ‘왜’(倭) 자를 붙이는 관행은 조선 중기부터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서양에서 유래된 것들의 이름 앞에 ‘양’(洋) 자를 붙이는 관행은 개항 이후에야 생겼다. 그렇다고 양파가 양배추나 양상추와 비슷한 시기에 전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17세기 초에 간행된 <동의보감>에는 자총(紫蔥·자주색 파)에 관한 간략한 설명이 있는데, ‘맛이 맵지 않다’고 한 것으로 보아 양파로 추정된다.

양파는 고대 서남아시아와 지중해 연안에서 재배되기 시작하여 16세기 이후 전세계로 퍼졌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리 많이 먹지 않았다. 양파 소비는 일본에서 먼저 급증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인 이주민이 늘어남에 따라 그 재배 면적도 늘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일본 이름인 옥총(玉?q·다마네기)으로 불렸다. 일제강점기에 양파는 ‘서양 요리’에 어울리는 채소로 취급되어 육류와 함께 구워 먹거나 ‘덴푸라’로 만들어 먹는 게 일반적이었다. 조선총독부는 1932년 농촌진흥운동을 벌이면서 양파 재배를 농가 부업으로 권장했다.

우리나라에서 양파 재배와 소비가 급증한 것은 1960년대 이후 식생활의 서구화가 진행되면서부터였다. 다마네기라는 이름이 양파로 바뀐 것도 이 뒤의 일이다. 현대 한국인의 1인당 양파 소비량은 세계 최다 수준이다. ‘양파 같은 사람’이 많아진 것도 이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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