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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30 19:16 수정 : 2005.12.30 19:16

곽노필 국제부장

편집국에서

핵폭발이 일어나려면 핵물질이 연쇄적으로 핵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임계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임계상태에서는 아주 조그만 충격이 엄청난 변화를 일으킨다. 잘 올라가던 모래성이 어느 순간, 단 하나의 모래알 무게를 견디지 못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2005년은 지구촌이 이 임계상태를 향해 돌진하고 있음을 드러낸 한 해인 듯하다. 곳곳에서 ‘믿기지 않는 일’들이 터져나와, 겉으론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 내부가 실제론 갈등투성이임을 보여줬다. 잠복해 있던 갈등들은 작은 충격에도 순식간에 사회 전체를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넣었다.

수상안전 요원과의 시비에서 비롯된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중동계-백인 인종충돌(12월), 청소년 2명의 감전사가 발단이 돼 프랑스 전역을 휩쓴 북아프리카계 이민자 2, 3세들의 방화소요(11월)가 그런 사례였다. 파리 시위가 사회적 약자들의 궐기였다면, 시드니 충돌은 사회적 강자들의 폭력이라는 점에서 더욱 전율을 느끼게 했다.

폭발력의 두 축은 빈부격차와 이주민(또는 인종갈등) 문제였다. 4년 만에 다시 지구촌을 테러 공포에 휩싸이게 한, 7월의 런던 자살폭탄 테러도 범인이 가난한 이슬람 이민자들 자녀였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에 있다. 파리 소요와 런던 테러 뒤에는 과거 식민지-종주국 관계 시절부터 움튼 갈등의 역사가 자리잡고 있어 우리를 더욱 착잡하게 했다. 유럽의 전후 재건을 위한 인력 수요를 따라 그들은 옛 식민지 종주국으로 건너왔다. 하지만 ‘영광의 30년’이 끝난 뒤 그들에게 주어진 보상은 실업과 차별이었다.

8월 말 물에 잠긴 ‘재즈의 본고장’ 뉴올리언스도 세계 최강국의 위용 뒤에 가려 있던 빈부격차와 인종갈등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하루아침에 가족과 생활터전을 잃은 흑인 빈민들은 부시 행정부가 ‘가진 자들만을 위한 정책’을 펴온 결과라며 격한 불만을 토해냈다.

세계화 흐름을 타고 빈부격차와 이주민 문제는 앞으로 더욱 폭력적이고 광범위하게 표출될 것이다. 올해 파리와 런던, 뉴올리언스 등에서 벌어진 일들은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전경고인 셈이다.

하지만 지도자들이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지도자들은 사태 앞에서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 피해가려 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존 하워드 총리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인종주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강변하다 여론의 질타를 맞았다. 뉴올리언스 재해 당시 부시 대통령은 “제방이 붕괴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무책임한 말로 입방아에 올랐다.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소요 발생 열흘이 지나서야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내 눈총을 받았다. 교수들이 올해의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사자성어로 뽑은 ‘상화하택’(위는 불, 아래는 못)은 지구촌 사회 전체를 풀이하는 데도 안성맞춤이었다. 지도층이 국민과 따로 노는 것 역시 국경을 넘나드는 지구촌 현상이었다.

새해를 맞는 지구촌 지도자들에게 2005년이 던져준 메시지는 무엇인가? 모래성이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에 들쭉날쭉한 곳을 가다듬어 평평하게 하라는 것이다. 높은 곳은 누르고, 낮은 곳은 북돋우는 게 무너지지 않는 모래성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그러려면 주먹을 쥐고 사자후를 토하는 대신, 두 팔을 벌리고 귀를 열어야 한다. 서양식으론 톨레랑스요, 동양식으론 상생의 지혜다.


이들 나라의 고민은 곧 우리의 문제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빈부격차는 경계수위로 치닫고 있고, 외국인 수도 이제 총인구의 1%를 넘어섰다고 하니 말이다.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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