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1.01 21:07
수정 : 2006.01.01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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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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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은행에 공적 기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은행이 돈을 잘 벌어서만은 아니다. 배경에는 몇 해 사이에 너무도 달라진 은행권 모습이 있다. ‘외국인 판’으로 변했다. 4대 시중은행 중 우리은행을 빼곤, 모두 외국인 지분율이 압도적이다. 국민은 85%가 넘고, 하나 78%, 신한이 57%에 이른다. 시중은행 3곳의 경영권은 아예 외국계로 넘어갔다. 주주총회가 끝나면 외국인 주주들은 배당잔치를 할 게다.
국수주의를 살려 외국자본을 배척하려는 뜻이 아니다. 외국계 손아래 들어간 은행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젠 곱씹어 보자는 거다. 금융은 산업과 함께 경제를 이끄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은행은 금융의 축이다. 은행이 자금중개 기능을 제대로 해야 경제도 돌아간다. 은행이 제구실을 한다면, 과실 중 얼마간 외국으로 넘어간들 억울해할 것 없다. 그렇지 못한 게 문제다.
은행도 마땅히 수익성을 중시해야 한다. 그러나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이라면 은행의 존재 이유는 퇴색한다. 아쉽게도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기업 쪽 대출 비중은 갈수록 줄고, 손쉽게 이자를 챙길 수 있는 가계대출 비중이 현격하게 늘고 있는 것이 단적이 사례다. 전체 대출 중 가계대출 비중은 지난 10년 사이에 20%대 후반에서 50% 수준으로 높아진 반면, 제조업 대출 비중은 40%에서 20%로 급감했다. 주택담보 대출 경쟁은 집값 폭등을 부추긴 원인이 되기도 했다. 주주 중심 경영에 치우친 탓이다. 외국자본의 은행권 ‘점령’과 동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 외국인 주주의 관심사는 주가와 배당이다. 한국경제와 더불어 장기적 성장기반을 다져가는지는 관심권 밖이다. 한국민 눈치 볼 것도 없다. 경영진은 외국인 주주가 원하는 바를 따르기 마련이다. 금융 당국의 공익성 강화 주문에,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정부가 은행들이 수익을 계속 내도록 도와줘야지, 섣불리 공익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서는 안 된다”고 반발했다. 금융당국은 떨떠름 했겠지만 외국인 주주에게는 예쁜 말이다.
클린턴 미국 행정부 때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는 <국가의 일>이란 책에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면 기업을 누가 소유했는지 국적을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고 했다. 세계화 흐름을 반영한 명언의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뒤집어 보면, 자본에도 국적 차이는 있지만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면 외국자본도 국익에 부합한다는 뜻이 된다. 외국자본이 국내 은행권에 들어와 일자리를 늘렸을까.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어느정도 기여했지만 고용면에선 아니다. 은행원을 잘라내는 데 앞장섰고, 고용 창출로 이어질 수 있는 기업대출 비중은 확연히 줄였다. 은행의 고용 기여도는 떨어지고, 국민경제 순환에서 빠져나가는 부는 늘었다. 이런데도 자본의 국적을 따지지 말아야 하나. 생각해볼 일이다.
누가 은행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금융당국이 의지를 보이지만, 은행이 쉬 바뀔 것 같지 않다. 더 큰 힘은 국민이자 금융소비자에게 있다. 그동안 너무 무덤덤해했다. 새해부턴 어느 은행의 경영방식이 국익에 더 맞아드는지 한번쯤 살펴보고 거래 은행을 선택하면 어떨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이자를 후하게 주는 것도 아니라면 은행 거래도 나라경제에 기여하는 쪽으로 해보는 게 나쁠 건 없다. 주주가 누구인지도 무시할 수 없지만, 더 중요한 잣대는 산업자금 공급에 얼마나 적극적인지, 사회 책임 경영을 하는지 등의 행태가 바람직할 터이다. 은행이 모두 마땅찮으면 제2 금융권으로 발길을 돌리는 방법도 있다.
김병수 논설위원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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