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1.02 18:47
수정 : 2006.01.02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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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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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무릇,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특히 인권을 최우선적 보호의 대상으로 함은 현대국가에 있어 불변의 지도이념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자못 다르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보다는 관료적 편의주의가 선행하며, 인권에 앞서 안보와 질서라는 권위주의적 질곡이 우선하였다. 문제는 이것이 지난 군사독재시대만의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오히려 현 참여정부에서는 경제와 시장의 논리가 법의 모습으로 치장하면서 더욱 정교한 모습으로 인권의 이념과 지향을 압도한다.
이번에 우상호 열린우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저작권법 개정안은 단적인 예이다. 저작권과 표현의 자유는 때로 심각한 갈등의 관계에 놓이기도 하기 때문에, 저작권 보호의 문제는 언제나 최고의 인권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배려와 더불어 검토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인터넷공간에 대한 이해 부족과 애매모호한 법률용어의 남발, 그리고 지나친 경제논리의 도입으로 인해 인터넷상 의사소통의 자유를 형식만 남게 할 위험을 안고 있다.
이 개정안은 ‘저작물 등을 복제·전송하도록 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온라인서비스 제공자에 대하여 저작권 보호를 위한 기술적 조처를 취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을 모호하게 규정함으로써 피투피나 웹하드는 물론 이메일, 메신저, 게시판 등 거의 모든 인터넷에 대하여 국가적 감시와 규제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복제·전송’은 인터넷의 ‘주된 목적’이며, ‘저작물 등’의 복제·전송 여부는 단순히 매체를 제공하는 온라인서비스 제공자가 아니라 그 이용자인 누리꾼들이 결정한다. 사실상 개정안은 모든 유형의 온라인서비스 제공자들을 규제대상으로 전락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미니홈피나 블로그 등이 무차별적으로 규제되며, 이 과정에서 사이버공간 자체를 ‘불법의 천지’로 만들 위험이 존재한다.
또한 개정안은 문화관광부 장관 등에게 불법복제물에 대하여 수거·폐기 혹은 삭제·중단이라는 강력한 권한을 부여한다. 그러나 그 전제가 되는 불법성 여부가 오로지 행정관청의 일방적 판단에만 일임되어 있고, 그 판단만으로 곧장 수거·폐기 등의 물리적 강제조처를 가능하게 하였다는 점은 법치주의의 이념에 정면으로 반한다. 인터넷상의 의사소통에 대한 일상적 감시와 규제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검열’이라는 위헌적 조처를 제도화하기 있기 때문이다. 사법부가 아닌 행정관청의 행정적 판단만으로 그 유통을 차단하는 것 자체를 검열로 보는 것은 이미 우리 헌법재판소의 확고한 견해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뿐 아니라, 개정안은 저작권 침해에 대해 고소 없이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모든 저작물은 문화적 공동생활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어디까지가 저작권의 보호대상인지 판단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더구나 저작권은 개인적 권리로서 그 행사와 보호는 일차적으로는 개인의 문제이므로, 그 침해 문제는 그때그때 당사자들의 주장과 입증을 통해 형사적 처벌의 가부를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개정안은 문화산업의 육성이라는 명분만으로 친고죄 규정을 삭제함으로써 국가가 직접 사적 영역에 개입하게 하고, 문화가 경제에 종속되게 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인터넷 공간이 산업주의의 미명 아래 관료적 편의주의와 소수 이익단체들의 로비에 묻혀 국가적 관리와 규율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일각에서 말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의 탄생을 우려하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한상희/건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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