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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02 18:49 수정 : 2006.01.02 18:49

홍경준 성균관대 교수˙사회복지학

세상읽기

세밑에 설문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교수신문>은 ‘약팽소선(若烹小鮮)’을 새해의 기대와 소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선정했다. 이 사자성어는 노자에 ‘치대국(治大國), 약팽소선(若烹小鮮)’으로 나오는 글귀의 일부로, 작은 생선을 삶듯이, 그대로 두고 기다리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뜻이란다. 왜 이런 사자성어가 선정되었을까. 아마도 작년에 우리 사회의 정치나 행정, 경제와 복지, 노동, 심지어 언론이나 과학의 영역에서 진행되었던 여러 일들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 때문이었으리라. 작은 생선을 온전히 삶듯이 차분히 두고 기다릴 줄 아는 진득함과 여유가 있었더라면, 필요 이상의 다툼이나 힘의 소진 없이 더 좋은 방향으로 처리할 수 있었던 일이 참으로 많았던 한 해였다. 그런 느낌 탓인지 약팽소선의 자세가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사람들의 마음마다에 자리 잡기를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새해의 덕담으론 참으로 어울려 보인다. 우리,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말이다. 코앞에서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삶아지는 작은 생선을 그대로 두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진득함과 여유의 격식이 요구되며, 맛있는 냄새는 식욕을 돋우는 또 하나의 즐거움쯤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와는 전혀 다른 상황, 가령 먹는 것 그 자체가 생존의 절박한 요구인 상황이라면 어떨까. 생선이 으깨지든 맛이 엉망이든 상관없이 그저 냄비 뚜껑을 열고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대고 혀가 데든 말든 남이 먹을세라 후루루 입에 쏟아 붓기 십상이다. 절대빈곤의 나락에서 허우적대다가 불과 한 세대 만에 세계 11위의 무역대국으로 발전하고 정치민주화의 수준도 이제는 어디 내놔도 크게 손색이 없는 오늘의 대한민국, 그래서 2차대전 이후 70여개나 된다는 신생 독립국 중에서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히는 우리에겐 사실 작은 생선을 온전히 삶을 만한 여유가 그동안 없었을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보다는 그렇게 절차나 과정은 생략하면서, 안 되면 되게 하고 또한 하면 된다는 신념을 그동안 우리가 이룩한 성취를 통해 집단적으로, 또한 성공적으로 학습해 왔는지 모른다. 진득함과 여유의 격식에 대해선 무시와 질투가 적당하게 섞인 눈길로 처리해주는 방법까지 어느새 뼛속 깊이 체화하면서 말이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정부의 정책 입안에서부터 가까운 이들끼리의 여행 계획에 이르기까지 그저 닥치면 닥치는 대로 ‘빨리 빨리’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면서 더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허둥거리고 있다. 매사를 이렇게 처리하고 또 당황하는 행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장 지상주의의 또 다른 단면이다. 이미 그 적합성을 상실한 그것처럼 이런 일처리 방식도 지금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폐습일 뿐이다. 그래서 새해를 맞이하면서 스스로 각오를 해 본다. 올해엔 나에게서 이 폐습을 몰아내보리라는. 문제는 그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인데, 내가 생각해 본 바는 두 해 전 학교 주최의 연수에서 들었던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중요하면서 급한 일에 우선순위를 두며, 대부분의 시간을 쓴다. 그러지 말고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을 먼저 하라. 이렇게 습관을 들이면 점차로 중요하지만 급하게 해야 하는 일이 줄어들고, 처리하는 일의 수월성은 커지기 마련이다. 내가 들었던 요지는 대충 이렇다. 작은 생선을 온전히 삶기 위해 새해엔 그렇게 해볼 요량이다. 그러니 우리, 급하지도 않은 일을 하고 있다고 서로 핀잔주지는 말자. 아니 서로에게 핀잔주도록 압박하는 성장 지상주의를 넘어서자. 그게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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