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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05 19:24 수정 : 2020.01.06 13:21

홍진아 ㅣ 커뮤니티 서비스 ‘빌라선샤인’ 대표

지난해 봄, 일의 미래와 관련된 콘퍼런스에 초대되어 엔(N)잡 경험을 발표해야 할 일이 있었다. 청년 콘퍼런스라는 말이 무색하게 다수의 발표자 중 청년은 단 두 명이었고, 모든 발표자 중 여성은 나 혼자였다. 물론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었다. 여성들을 위한 콘퍼런스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무대에서 나는 여성을 대표하거나 청년을 대표했다. 이런 이상한 구성비 속에서 발표를 하면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남들이 하지 않은 경험을 한 재기발랄한 여성이자 청년으로서 역할극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이런 기분에는 진행자의 말이나 태도도 영향을 미친다. 내 경험을 두고 ‘(얘기를 듣고 나니) 상쾌한 느낌이 든다’고 얘기하거나, 패널 토론을 할 때 주제와 상관없는 신상과 관련된 질문을 나에게만 던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게 은근히 요구되는, 소위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역할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지만, 마음먹은 대로 하기란 쉽지 않다. 괜히 삐딱하게 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와 함께, 여자가 나뿐인 상황에서 내가 전문성을 잘 보여주어야 또 어딘가에서 청년인 여성이 전문가로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부담감도 밀려온다. 무대에서 ‘여성 패널이 한 명만 더 있었어도 이렇게 고민스럽지는 않을 텐데’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이런 생각은 단순히 기분만은 아닌 듯하다. 스웨덴의 정치학자 드루데 달레루프는 여성이 상징적인 존재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집단 내에 일정 정도 이상의 수는 확보되어야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임계수치’(critical mass)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 개념에 따르면 의회든 정부든 여성 정치인의 비율이 30%가 확보되면 소수의 대표가 상징적·예외적 존재라는 압박에서 벗어난다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30%가 확보되기 전에는 여성 정치인들은 그들의 행동이나 말이 상징적으로 여겨지거나 과대 대표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이는 당사자의 행동의 위축 또는 영향력의 축소를 가져온다는 뜻이다. 다수에게 집중된 자원의 네트워크를 약화시키고, 권력관계의 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것도 30%가 확보된 뒤부터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임계수치는 정치이론이고, 소수자들이 정치에 더 많이 참여해야 하는 근거로 쓰인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정치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남성 패널 중에 섞여 있는 한 명의 여성 패널, 97% 남성 임원들 사이의 3%의 여성 임원, ‘최초의’ 또는 ‘유일한’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일하는 수많은 여성 전문가들이 일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전문성과 탁월함을 발휘할 수 있으려면 우리에겐 더 많은 여성 패널이, 여성 의사결정권자가, 여성 전문가가 필요하다.

최근 법무부 장관으로 추미애 장관이 임명되면서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내각에서 여성 비율이 30%를 기록했다. 언론에서는 이것을 ‘여풍’이라며 연일 보도하고 있다. 축하할 일이지만, 이제 겨우 시작일 뿐 여풍이라 하기엔 아직 이르다. 행정부의 여성 장관 수는 늘었지만, 그만큼 여당의 여성 중진 의원 수가 줄었고, 이들을 대신할 여성 국회의원을 발굴해야 하는 숙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 숙제를 제대로 풀어나가는 2020년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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