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1.03 17:57
수정 : 2006.01.03 17:57
유레카
서울 종로구에는 ‘구름과 진흙’이라는 제법 운치 있는 이름을 지닌 동네가 있다. 바로 운니동이다. 이곳에는 조선시대에 내시들을 관할하던 내시부가 있었다. 지금은 헐리고 없지만 한때 프로기사들의 대국 장소로도 이름 높았던 운당여관이 그곳이다.
내시부는 임금의 수랏상에 오르는 음식을 감독하는 상선을 우두머리로 술 빚는 일을 관장하는 상온, 차 대접을 맡은 상다, 궁중의 정원을 가꾸는 상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140여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들은 내관, 중관 등으로 불린 벼슬아치였으나 하는 일이 허드렛일이었고 신체적 불구 등으로 사실은 매우 불우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화려한 궁궐과 자신들의 초라한 처지를 한자성어인 구름과 진흙의 차이(운니지차)에 빗대 한탄했으니, 이것이 운니동의 연원이라고 한다.
구름과 진흙이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후한서> 중 세속을 등진 은자들의 생애를 다룬 ‘일민전’에서 오창이라는 관리가 교신에게 보낸 글에서다. “비록 뜻은 구름을 타고 있지만 현실은 더러운 진흙을 밟고 있으니 삶의 자리가 같지 않구려.” 실존의 불안과 존재의 흔들림을 지적하며 세상에 나오기를 권유하는 글이다. 중국 남조시대의 시인 양순제는 “운니가 이미 다른 길이거늘 어찌 따뜻함과 서늘함이 같은 계절에 있을까” 하고 읊었고, 당나라 시인 전기는 “적막함 속에 옛날 화려했던 진나라 함양의 궁궐을 회상하니 비로소 운니의 차이를 탄식하네”라는 시를 남겼다.
국내 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2005년 경영환경을 가장 잘 표현한 말로 ‘운니지차’가 선정됐다고 한다. 대기업-중소기업, 수출-내수 등 산업·경제 부문에서의 격차가 컸다는 뜻이다. <한겨레>가 진보·개혁 성향 지식인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한국사회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역시 양극화 문제가 뽑혔다. 새해에는 구름과 진흙의 간격이 조금이라도 좁혀질 것인가.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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