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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04 21:25 수정 : 2006.01.04 21:25

김효순 편집인

김효순칼럼

새해 초 언론매체들이 다룬 특집 가운데 내년 말에 있을 대통령 선거의 후보군들에 대한 지지도 조사가 눈에 많이 띄었다. 관련기사를 읽다가 4, 5년 전 연말의 기억이 떠올랐다. 한 송년회 모임에 갔더니 이런저런 시답잖은 얘기들이 오고가다가 박원순 변호사가 대통령 감으로 어떠냐는 소리가 좌중에서 나왔다. 처음에는 시민운동으로 명성을 쌓은 분을 너절한 정치판에 연결시키다니 참 터무니없구나고 생각했으나, 갑갑한 정치 현실을 보면 그런 발상이 나올 수도 있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박 변호사가 올 봄 한국사회의 주요 현안에 대한 구체적 대안들을 내놓기 위한 연구소 ‘희망제작소’를 출범시킨다고 해서 그의 새 행보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그는 결혼생활말고는 십년을 같은 일을 계속해본 일이 없는 보헤미안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본인에게 10년이 의미 있는 수치냐고 물었더니,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안주하지 않고 다른 일을 시작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검사 생활을 1년 한 뒤 시민단체의 대명사로 성장한 참여연대에서 7~8년,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에서 5년 하고서 또 일을 벌인다고 하니 그의 방랑벽은 쉽사리 멈출 것 같지 같다.

10년 단위로 인생을 설계하며 치열하게 살다 간 사람으로 일본의 여성 저널리스트 지바 아쓰코가 떠오른다. 일본의 중국 침략 때 상하이에서 태어난 그는 1964년 <도쿄신문>에 입사해 경제부 기자로 활동했다. 74년부터는 도쿄 주재 외신기자로 변신해서 <월스트리트 저널>의 아시아판이나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터> 같은 잡지에 기고를 했다. 그의 말로는 10년 동안 일본 독자를 상대로 기사를 써 왔으니, 다음 단계에는 외국 독자에게 도쿄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마흔을 조금 넘긴 시점에 병마가 찾아온다. 81년 1월 유방암 수술을 받은 그는 기자생활을 계속하는 한편으로 자신의 투병기를 세밀하게 기록해서 잡지 등에 연재를 했다. 다시 인생의 전환점을 찾으려고 83년 여름 뉴욕으로 활동무대를 옮기려고 준비하던 중 암이 재발됐다는 통보를 받는다. 그는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해 연말 뉴욕으로 단신 이주하는 모험을 강행했다. 다시 작업양태를 바꿔 일본 독자에게 뉴욕에서 본 세계를 전하겠다는 것이다. 홀로 외롭게 살면서도 자신의 인생을 즐길 줄 알았던 그의 뉴욕 생활은 3년6개월로 끝난다. 같은 일을 장기간 반복한다면 바보가 된다는 강박감을 가진 그는 87년 마흔일곱 한창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병마와 싸우면서 최후까지 일감을 놓지 않았던 그의 투병기는 <유방암 따위에 질 수 없다> <죽음 준비> 등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고용안정이 직장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로 부각됐고 청년실업 문제가 여전히 심각한 상황에서 10년짜리 꿈을 가져보라고 말하는 것은 뜬금없는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의 처지가 어떠하건, 긴 안목으로 미래를 설계해 보는 것은, 시도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개인뿐만 아니고 조직이나 사회도 마찬가지다. 새해가 됐는데도 별로 밝은 소식이 전해오지 않는 이 때 10년 후, 20년 후 한국의 목표, 미래, 희망을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뭔가 느낌이 달라지지 않을까? 이땅의 어디에선가 10년 후를 생각하며 인재를 키우는 사람, 나무를 심는 사람, 첨단기술의 개발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넘쳐나기를 기대해 본다.

김효순 편집인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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