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1.05 20:20 수정 : 2006.01.05 20:20

아침햇발

어느 시대 위정자를 막론하고 그의 능력이 얼마나 출중했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의 하나는 재임기간에 어떤 인물을 어떻게 썼는지에 대한 평가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도 취임 초기 가장 고심하고 관심을 쏟은 것이 인사 문제였다. 노무현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인사 문제에 대한 혁명적 발상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앞선 정부들의 실패 원인이 인사의 실패에서 비롯됐다는 인식 아래 “인사를 사람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 운영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인사의 신뢰 문제에 대한 노 대통령의 탁월한 언급이다. 그는 당선자 시절 “인사의 생명은 공정이 아니라 공정에 대한 신뢰”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집권 4년차에 접어든 지금 시점에서 보면 노 대통령의 그런 언급은 허망하게 느껴진다. 시스템에 의한 인사는 말하기도 쑥스럽다. 공정성은 접어놓고라도 인사의 생명이라고 스스로 언명한 신뢰 역시 추락했다. 최근 논란의 초점이 된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 지명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여당 의원들마저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상황은 인사가 총체적 불신의 대상이 됐음을 의미한다.

당나라 때의 재상 위징은 ‘양신’과 ‘충신’을 구별해서 설명했다. 양신은 곧은 말을 서슴지 않는 좋은 신하요, 충신은 충성만을 바쳐 오히려 나라를 망치는 신하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래서 ‘명군과 양신의 만남’이 국가의 안녕과 태평을 위해 가장 좋은 조합으로 제시됐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 노 대통령 주변에 양신들이 많은가를 살펴보면 고개가 갸우뚱거려지지 않을 수 없다. 황우석 교수 사태에서 드러난 청와대 참모진의 잘못된 보좌 등은 하나의 보기일 뿐이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날이 갈수록 양신보다는 충신 쪽에 마음이 기우는 듯하다.

사실 이제 와서 노 대통령의 개각 내용이 잘됐느냐 못됐느냐,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반발이 지나친 행동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상황이 돼 버렸다. 심각한 당-청 갈등은 그 자체로 여권이 맞닥뜨린 현실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 분명히 확인된 것은 여권 내부에 정서나 신념 등에서 서로 메우기 힘든 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번 개각 파동은 따지고 보면 이미 대연정 문제나 민주당과의 합당론 등에서 불거져나온 철학과 관점의 차이를 더욱 극명하게 드러낸 결정적 계기였을 뿐이다. 노 대통령이 여당 의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자신의 뜻을 강행한 것도 이 대목에 대한 명백한 정치적 메시지로 읽힌다. 그리고 이런 간극은 앞으로의 정치일정과 더불어 커지면 커졌지 쉽게 메워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서로간에 식지 않은 감정의 덩어리를 덥석덥석 토해내는 모양을 볼 때 여권의 체질개선이나 건강회복을 기대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떨어지는 오동잎 한 잎에서 가을을 예감하는 것처럼 지금의 사태가 마치 이별의 전주곡처럼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옛말에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이라는 말이 있다. 개념이 모호한 백성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현대 정치에서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는 배와 물과 같다. 열린우리당의 상당수 의원들의 눈에는 지금 배가 물을 떠나 뭍으로 올라가는 형국이요, 청와대의 시각에서 보면 물이 제멋대로 요동쳐 잘 나가는 배를 흔드는 모양새다. 앞으로 그 물길의 방향이 어디로 바뀔지, 배의 항로는 어디로 향할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치의 시계는 흘러가고 있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