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1.08 18:30
수정 : 2006.01.0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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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평화포럼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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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나이 예순에 이르면 직선의 시간이 순환의 시간으로 전환되는 회갑을 맞이하는데 비로소 순리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하여 이를 이순(耳順)이라 부른다. 그런데 우리사회가 지난해로 광복 60돌을 맞이하면서 이순의 나이를 넘겼다. 과연 우리사회는 이순에 걸맞은 역사의 나이테를 어떠한 모습으로 맞이했을까. 그리고 새로운 60년을 시작하기 위한 미래 국가의 전망과 대안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을까.
지금부터 정부수립 60돌을 맞이하는 2008년까지의 시간은 정치지도자들이 국가의 내일을 기획하고 이를 대중들에게 설득하며 보냈던 벅찬 감동으로 충만한 해방정국과도 비견될 수 있는 시기이다. 그 사이에는 올해 있을 지자체 선거와 내년의 대통령 선거, 후년의 국회의원 선거가 차례로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새로운 60년을 기획할 수 있는 기대와 흥분보다는 새로운 전망의 부재에 따른 허탈감과 변화의 동력에 대한 상실감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하면 된다’라는 구호가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어법으로 세련되게 탈바꿈 하였지만 우리의 꿈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사회적 토론을 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지난 60년간 사회적 토론이 생략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욕구가 매우 분명했기 때문이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경제전선에서 뛰느라 바빴고 군부독재 타도라는 뚜렷한 민주화의 적이 존재했기 때문에 번거로운 사회적 토론과 긴 호흡을 요구하는 국가디자인보다는 현재진행형으로 존재하는 전략을 수립하기에 바빴을 뿐이다.
그러나 특정기업만을 세계적인 초우량기업으로 키워낼 뿐 양극화를 확대재생산 하는 경제성장에 국민들이 희망을 갖고 동참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민주화가 진전되고 있지만 시민들의 동의와 합의를 도출해내지 못한다면 정치는 ‘남의 잔치’일 뿐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없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지금의 가난을 대물림할 수밖에 없는 사회라면 누가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싶겠는가.
그래서 우리가 경험하는 양극화는 단순히 경제문제가 아니라 국가 공동체에 대한 합의를 다시 창출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정치사회적 어젠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국가 기획은 ‘선거’라는 계약을 통해 위임하는 형식으로는 성취될 수 없다. 선거가 새로운 기획을 가능하게 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내는 기제로 작동하지 않는 한 올해부터 매년 치르게 되는 선거에 희망을 걸기 어렵다.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사회적 공감대에 기초한 새로운 국가를 디자인하고 실천하는 일이다. 이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시민국가(civic state)’이고 다른 하나는 ‘통합국가(integrated state)’이다. ‘시민국가’란 대화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사회적 합의에 의한 공공성을 창출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가이다. ‘통합국가’란 남과 북이 어느 일방으로 통일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간에 균형을 유지하고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지속적인 노력의 과정에서 점차로 이루어지는 단계로서의 국가를 의미한다. 이 두 가지 과제는 우리들에게 많은 상상력을 요구하며 사회적 토론과 참여 그리고 공적인 책임을 그 덕목으로 하고 있다.
2년 뒤면 정부수립 60돌이 되고 대한민국은 새 대통령과 새 국회를 맞는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우리의 가치로, 희망으로 둘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귀 기울일 줄 아는 이순을 넘긴 나이에 시민국가와 통합국가를 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해부터 매년 치러야 하는 선거가 미래의 역사를 함께 기억할 수 있는 즐거운 축제가 되기를 바란다.
이기호/평화포럼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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