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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10 18:08 수정 : 2006.01.10 18:08

권용립 경성대 교수·국제정치

세상읽기

지금 북핵 6자회담에는 두 현실주의가 창과 방패처럼 맞서 있다. 핵 포기 이후에는 북한의 현 체제를 미국이 그냥 둘 리 없고, 이런 미국을 견제할 최후 수단은 핵무기뿐이라고 믿는 북한의 군사 현실주의가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현 북한 체제가 개발할 핵무기는 반드시 테러 집단에 유출되어 미국 공격에 사용될 것이라는 미국의 안보 현실주의다. 정도는 서로 다르지만 똑같이 ‘공포’에 바탕을 둔 두 현실주의가 맞선 국면에서는 문서상의 약속도 단지 약속일 뿐이다. ‘9·19 베이징 공동성명’이 좌초할 위기에 처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한걸음씩 양보해서 서로 가까워지는 것이 협상의 문법이다. 그러나 베이징 합의 직후 북한은 핵 동결과 폐기 조건으로 경수로부터 제공하라고 요구했고, 이에 대해 미국은 북한의 달러 위조를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대북 금융제재를 추진해왔다. 그리고 이제 북한은 금융제재의 해제를 6자회담의 재개 조건으로 다시 내거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주한미국대사가 북한을 범죄정권으로 지칭한 자신의 발언에 대해 유감 표명을 할 것이라는 소식과 북-미 간의 ‘조용한’ 접촉이 추진되고 있다는 말도 들리지만, 협상의 기본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북-미 관계의 기본틀이 바뀌지 않는 한 은밀한 ‘접촉’과 ‘유감 표명’은 백번 해봐야 소용없다.

바로 이런 시점에 지난 3년간 외교안보 라인을 조율해온 국가안보회의 사무차장이 통일부 장관에 내정되었다. 여당의 반발까지 초래한 복지부 장관 내정자 문제는 청와대가 “차기, 차차기 지도자 육성 의도”라는 정치의 전범을 벗어난 표현까지 써가면서 변호할 만큼 언론의 관심을 끌었지만, 정작 이번 개각의 중요성은 통일부에 숨어 있다. 한-미 관계와 남북 관계의 해법이 단일 방정식에 엮인 한국 외교의 고비 상황에서 이 둘을 함께 관장해온 실무 책임자가 통일부 장관직에 전면 배치되면서 외교정책이 통일정책에 종속될 우려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적 포석 아래서는 남북 관계의 극적 진전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싶은 유혹에 한국 외교가 굴복할 가능성도 당연히 커진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와 번영정책의 파트너로서의 ‘김정일 위원장’과 평균적 미국인의 뇌리에 각인된 ‘독재자 김정일’은 전혀 다른 두 사람이다. 이것은 두 개의 이념과 가치관이 아니라 두 개의 현실이다. 이 두 현실이 부딪치는 상황이 지금의 한-미 관계다. 따라서 현 단계의 한-미 관계와 남북 관계를 아우를 단일 해법은 ‘두 김정일’을 하나로 만들 묘수뿐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남북경협이나 남북화해를 넘어 한국 외교관계의 전체 틀 속에서 남북 관계를 조율할 현실적 전략부터 마련해야 한다. 지난해 야심차게 터뜨린 ‘중대 제안’을 싱겁게도 북한이 거부했을 때, 또 베이징 합의 직후 북한이 경수로 제공부터 요구했을 때 적절한 후속 전략이 없었던 사실은 정치만 있고 전략은 없는 대북정책의 맹점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외교의 과제는 차기 대선 시즌에 극적으로 활용될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일이 아니다. 남북정상회담이 진정 북-미 간의 대결 구도 해소에 도움을 줄 방책인지 그 가능성부터 따져보고, 만약 그렇다면 이를 외교 차원의 행사로 규정하고 기획하는 일이다. 이런 지혜 없이 추진될 남북정상회담이라면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위기 해소에 역행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통일과 평화는 엄연한 당면 과제이지만 평화체제 수립 이전의 남북 관계는 국제정치의 시야와 식견으로만 풀 수 있다는 말이다.

권용립/경성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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