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1.12 18:30 수정 : 2006.01.12 18:30

임범 문화생활부장

아침햇발

영화 산업이 커지면서 ‘어떤 영화가 재미있냐’ 못지 않게 ‘어떤 영화가 관객을 끄냐’가 관심거리가 된 지 오래다. 사람들은 예비 관객으로서 자신이 보러 갈 영화의 선택에 필요한 정보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 상영하는 영화들의 전체 흥행 판도에도 귀를 기울이는 관전자가 돼 가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지금 한국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의 박스오피스는 지금 한국인들의 정서와 취향을 반영하는 요긴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박스오피스는 그 자체가 살아 있는 콘텐츠이자, 동시대를 읽게 하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세밑새해 흥행을 어떤 영화가 제패할지 관심들이 많았다. 결과를 보면 지난해 12월 중순 개봉한 <태풍>이 1월 초에 전국 관객 400만명을 넘겼고, 함께 개봉한 <킹콩>이 지난주말(6~8일) 370만명을 넘어서면서 400만 고지 돌파를 코앞에 두고 있다. 이 두 영화보다 2주 늦게 개봉한 <왕의 남자>가 기염을 토하며 지난 11일 350만명을 돌파했다. 11월 개봉한 <해리 포터와 불의 잔>은 지난 주말까지 390만명이 관람했다. <왕의 남자>의 흥행세가 보통이 아니지만 현재까지만 놓고 보면 승자는 <태풍>이다.

그런데 영화계에선 말이 많다. 지금은 많이 조용해진 편이지만 2~3주 전에는 성토 분위기였다. <태풍>이 스크린을 붙잡고서 내주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태풍>은 전국 스크린 1500여곳의 3분의 1이 넘는 540곳에서 개봉했다.(<킹콩> 개봉 당시 스크린은 370, <왕의 남자>는 255곳이었다.) 크리스마스 주말에 500곳, 신정이 낀 주말에 310곳으로 수가 줄었다. 그러나 영화인들은 만약 이 영화가 영화계 파워 1위인 씨제이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하지 않았다면 스크린이 훨씬 더 많이 줄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당시에 씨제이엔터테인먼트 계열 멀티플렉스인 씨지브이 극장에 영화를 보러갔더니 다른 영화들은 매진이고 <태풍>은 표가 남는데 이 영화를 서너개 스크린에서 틀고 있더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몇가지 변화들이 있다. 관객의 폭발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극장 수는 91년 762곳에서 2004년 354곳으로 줄었다. 극장이 줄다니? 극장은 줄었지만 스크린 수는 91년 762곳에서 2004년 1545곳으로 갑절이 늘었다. 이른바 복합상영관, 멀티플렉스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2004년 말 (스크린 5개 이상을 갖춘) 멀티플렉스의 스크린이 전체 스크린의 77%이며, 이 중 절반이 씨지브이,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세 멀티플렉스 체인의 것이다.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의 한 연구결과, 영화 자체를 사랑하는 ‘영화광’ 유형을 빼고, 여가선용이나 교제를 위해 극장을 찾는 이들의 50% 가량은 보려고 한 영화가 매진됐을 때 ‘다른 극장으로 가거나’(15% 안팎) ‘영화관람을 포기’(35% 안팎)하지 않고 같은 극장의 다른 스크린에 걸린 영화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니 다른 스크린에서 한 영화만 틀면 절반은 건진다는 계산이 나올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공급이 수요에 맞추지 않고, 수요 자체를 왜곡시키려고 하면 그 시장이 제대로 버틸 수 있을까?

한국 영화산업이 다른 문화 분야에 비해 급성장한 데엔 영화의 유통질서가 다른 분야의 문화상품보다 투명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멀티플렉스 시대가 되고, 극장체인을 소유한 대기업 투자·배급사들이 힘을 거머쥐면서 투명성이 약해지는 듯한 조짐이 보인다. 이제 박스오피스를 통해 동시대의 정서를 읽으려면 ‘어떤 영화가 관객을 끄냐’는 수준의 관심으로는 부족할지 모른다. ‘어디서 배급하냐’와 ‘스크린이 몇 개냐’를 함께 물어야 할지 모른다.

임범/문화생활부장 isman@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