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1.12 18:33
수정 : 2006.01.12 19:08
유레카
“악마의 얼굴이 저렇게 평범할 줄이야 …!”
2차대전 중 유대인에 대한 ‘최종적인 해결’을 기획하고 지휘한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1906~75)의 첫인상은 그러했다. 그에게서 기대했던, 700여만명을 학살한 자의 특별함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진부성에 대한 보고서>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아이히만은) 사악하지도, 유대인을 증오하지도 않았다. 단지 히틀러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에서 관료적 의무를 기계적으로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다. 가정에서도 그는 아이들을 끔찍하게 돌보는 가장이었다.” 이 말은 당시 유대인 사회를 발칵 뒤집었다. 아렌트는 나치의 부역자쯤으로 매도됐다. 그런 그가 지금은 시몬 베유, 로자 룩셈부르크, 에디트 슈타인과 함께 4대 유대인 여성 철학자로 꼽힌다.
아렌트가 정치학자로 강단에 섰다가 아이히만 재판 방청을 위해 <뉴요커> 특파원을 자청한 것은, 무엇이 인간을 악마로 만드느냐는 물음 때문이었다. 히틀러 여비서의 히틀러에 대한 평가는 “친절하고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다. 실제 히틀러는 시골 이발소 집 딸 에바 브라운에게 순정을 바쳤다. 나치즘의 이데올로그였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 역시 여섯 아이의 자상한 아빠였고, 이라크 포로를 개처럼 끌고다니며 기념사진을 찍었던 여성 미군 린디 잉글랜드 일병도 순진한 시골 처녀였다고 한다.
아렌트는 인간의 선한 의지를 믿었다. 그런 인간을 악마로 만든 것은 반성적 사고의 상실과 전체주의라고 그는 설명했다. 반성적 사고의 상실은 전체주의를 불렀고, 전체주의의 폭력적 이데올로기인 인종주의나 애국주의에 휩쓸리도록 했다는 것이다.
세기적 사기꾼이 되어버린 황우석 교수를 변명할 생각은 없다. 다만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우리의 전체주의적 속성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볼 뿐이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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