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1.15 17:58
수정 : 2006.01.15 17:58
유레카
어린 학생들이 줄줄이 해외 영어연수나 조기유학을 떠나고, 교육부는 국내 영어 조기교육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루라도 일찍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절박감이 온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이 절박감에서 비롯된 조기교육은 성공할까? 서울대 이병민 교수의 논문 ‘우리나라에서 조기 영어교육이 갖는 효과와 의미’를 읽어보면 생각보다 간단치 않다.
논문에 인용된 연구들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게 있다. 미국 앨라배마대학의 제임스 에밀 플리지 등 3명의 학자는 5.6~5.8살에 이탈리아에서 캐나다로 이주해 34년 동안 영어를 쓴 이들과 원어민의 발음을 다른 원어민들에게 들려줬다. 원어민들은 이민자들을 정확히 구별했다. 그리고 일상 생활에서 이탈리아어 사용비율이 3%인 집단보다 36%인 집단의 발음이 더 ‘외국인 같았다.’
“그럼 발음만 포기하지”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학 알레한드로 브라이스 교수는 여러 연구를 종합 분석한 논문 ‘이중언어 - 사례연구들 리뷰’에서 조기 유학생에 대한 12가지 통념을 반박했다. 미국 학교를 다니면 쉽게 영어를 배울 것 같지만, 말하기를 익히는 데만 2~3년이 걸리고 학문을 할 정도의 고급 단계에 이르는 데는 5~7년이 걸린다. 일찍부터 영어를 배우면 기간을 크게 단축시키리라는 기대도 실제 연구결과들과 거리가 있다고 한다.
큰 노력 없이 영어와 우리말을 모두 잘할 것이라는 생각도 오해다. 두쪽 모두 고급 수준을 유지하는 데는 엄청난 노력이 든다. 게다가 모국어는 잃어버리고 영어 능력은 제대로 발달하지 않는 현상도 흔하다고 한다. 영어에 노출되는 걸로 충분하다는 생각도 틀렸다. 의사소통의 필요성, 원어민 접촉, 원어민과 상호작용 및 오류수정(피드백), 시간 등 네 가지가 최소조건이다. 이래도 무조건 영어 조기교육, 조기유학만 고집하겠는가?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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