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1.16 18:05
수정 : 2006.01.1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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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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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지난 한 해 개인적으로 ‘적극적 고용개선조처’를 우리나라에 도입하는 현실 방안을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던 터라, 12월8일 이 내용을 담은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 무척 기뻤다. 그리고 지난 1월12일 입법예고된 시행령의 내용을 기업 인사 담당자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에 대상 기업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400여개 기업에서 45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을 때에는 기쁨의 수준을 넘어 감격하였다. 분위기도 수용적이었고 명백한 반대 기류도 없었다. 드디어 우리 기업들도 여성인력에 눈을 돌리게 되었는가 하는 ‘성급한’ 해석까지 하였다.
우리가 도입하려는 제도는 같은 업종의 다른 기업에 견줘 여성을 현저히 적게 고용하거나 여성 관리직 비율이 낮은 기업에 대하여 ‘간접차별’의 징후가 있다고 보고, 모든 인사관리 단계를 점검하여 이를 개선할 방법을 시행하도록 요구하는 제도이다. 그러니까 실력이 없어도 여성을 우대하라는 것이 아니라 차별적인 관행을 개선하여 여성에게도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라는 것이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기업문화라는 이름으로 굳어져온 남성 중심적인 기준을 그대로 여성에게 들이대는 것은 또다시 여성을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경고를 덧붙여서.
여성을 많이 고용하는 것이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요즘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었고 외국의 사례를 통해서도 밝혀졌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를 수긍하는 듯하다. 그런데 기업의 이해를 대변해야 하는 사용자단체가 보수적인 일부 기업에 눈높이를 맞추고 지나치게 방어적으로 접근해 안타깝다. 제도 적용 대상 기업의 수를 축소하고, 여성고용기준을 낮게 잡아서 기업의 부담을 줄여보겠다는 의도를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의 여성고용 수준을 살펴보면 기준을 낮추려야 더는 낮추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개선조처를 취해야 할 기업이 늘어나는 주된 이유는 관리직에 여성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의 관리직 여성 비율은 43%인데, 우리나라 대기업의 이 비율은 4.3%이다. ‘평균값’을 기준으로 삼으면 개선조처를 취해야 할 기업이 너무 많아 ‘중앙값’으로 적용해 보려고 해도, 음식숙박업을 비롯한 몇몇 업종을 제외한 대부분의 산업분야에서 여성 관리직 비율의 중앙값이 0%인데 어떻게 하나? 관리직에 여성이 단 한 명도 없는 기업이 전체의 절반을 넘는데 개선조처를 취해야 할 기업의 수를 어떻게 더 줄일 수 있단 말인가? 여성이 관리직에 단 한 명만 있어도 여성 관리직 비율 상위 몇위 안에 드는 기업이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형편이 이런데, 기업이 개선조처를 취하여 여성고용을 늘리면 어떤 인센티브를 줄 거냐고 묻는다. 조세감면을 해 줄 건지 근로감독을 면제해 줄 건지 확실히 답을 하라고 다그친다. 이 제도를 40년 동안 운영해 온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는 개선조처를 제대로 취하지 않으면 정부가 조달계약을 파기하고 향후 몇 년 동안 입찰을 금지하는 벌칙조항이 있다는 사실은 아는가. 처음부터 이 제도를 인센티브제로 운영하겠다고 생각한 정부의 소심함에 원죄가 있는데 누구를 탓할까.
우리 기업도 이제는 여성인력을 잘 활용해 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 인사담당 직원이 작성해야 하는 서류의 가짓수를 하나 더 늘려놓을 뿐인 제도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기업이나 정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장지연/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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