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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17 18:17 수정 : 2006.01.18 09:20

이일영 한신대 교수ㆍ경제학

경제전망대

국내에서도 스웨덴이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선 엔엘(NL)이니 피디(PD)니 하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는 것 같아 반갑다. 스웨덴은 일찍부터 국외 진보세력에게도 희망의 등불이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이 격렬한 경기 변동과 장기 침체에 빠져 있는 동안, 스웨덴은 ‘합의를 통한 현대화’를 통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스웨덴은 19세기까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자선단체의 단골 방문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돌보는 보건의료체계, 최상급의 대학까지 보유한 우수한 교육체계, 세계에서 가장 경쟁적인 시장경제를 함께 지니고 있다. 900만의 스웨덴 사람들은 모두 가장 많은 별장과 요트를 가지고 있으며, 볼보, 스카니아, 일렉트로룩스, 에릭손, 이케아 등 유수의 세계적 기업을 지니고 있다. 이웃의 노르딕 국가들도 대단한 우등생이다. 핀란드의 교육체계는 세계 최고이며, 덴마크는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 모델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스웨덴의 ‘신기’(神器)에도 균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업가 정신이 약해져서 유럽에서 창업률이 가장 낮은 편이라고 한다. 노동의욕의 결여로 실제 실업률이 공식 실업률 6.3%의 3배에 이른다는 추정도 나온다. 1990년 이후 노동참가율이 급속히 하락하였고, 이제 치료, 학업 등 갖가지 명목으로 노동인구의 20% 이상이 노동현장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노동조직과 사용자 단체와 최저임금 수준을 높이는 협약을 맺는 스웨덴 모델에서, 실업률이 높아지면, 협약의 수혜 범위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재정을 감안해 이민자에게는 되도록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민자들도 스웨덴 모델의 바깥에 있는 셈이다.

그리고 스웨덴 역시 몇가지 계기와 우연으로 만들어진 경로를 따라 발전해왔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스웨덴 모델의 핵심 요소는 잘 조정되는 노동시장과 노사관계다. 이는 1938년 찰츠요바덴 협약으로 전국적인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진 이후 제도화된 것이다. 여기에는 노동자총연맹(LO)과 사민당의 존재, 인접한 군사대국 독일, 러시아의 존재, 1930년대의 대공황과 전쟁 분위기 등 여러 요소가 작용했다.

또 하나 중요한 요소인 경쟁적 시장경제도 스웨덴의 특수한 조건에서 발전되었다. 스웨덴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늦게 출발했고 시장규모가 작았다. 따라서 19세기말부터 유럽시장을 지향해 높은 무역의존도를 나타냈으며, 개방을 통해 급속한 산업화를 추진했다. 그리고 1990년대 초반 심각한 경기 후퇴를 겪은 후, 정치가들과 노조지도자들은 세계화에 함께 적응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조세 및 재정지출 삭감과 금융과 산업의 자유화를 진전시켰다.

스웨덴은 여러 면에서 존경의 대상이지만, 우리에게는 먼 곳에서 깜박이는 등불이다. 동북아의 골짜기는 참으로 험준하다. 좁고 나이든 땅에 많은 인구가 살고, 세계 최강국들의 힘이 몰려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우나 강성대국을 외치는 북한의 연착륙 과제도 안고 있다. 그런데 연대의 전통과 개방의 심성은 허약하다. 스웨덴과 같은 고(高)조세-고(高)지출의 모델을 지향할 바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어차피 각자에게는 각자의 길이 있는 법이다. 그러니 우리는 동아시아-한반도에서 출발하여, ‘개방-혁신-연대’의 새로운 모델을 ‘발명’해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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