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1.18 21:41
수정 : 2006.01.18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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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한겨레> 시민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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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칼럼
노무현 대통령도 인정했다시피, 이 나라를 실제로 지배하는 권력은 시장이다. ‘참여정부’가 말하는 ‘참여’가 ‘시장의 전일적 참여’, 다시 말해 ‘시장 지배’의 다른 말에 지나지 않는다면, 국가인권위는 그 이름보다 더 무거운 구실을 요구받고 있다. 왜냐하면 이땅을 실제로 지배하는 시장에는 경쟁과 이윤만 있을 뿐 인격도 인권도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서 시장 지배는 자본과 사용자의 전횡을 불러와, 가령 불법파견을 방치한 채 정규직을 정리해고 해도 속수무책인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국가인권위가 국가 인권정책 기본계획(인권NAP) 권고안을 내놓은 일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정치적 민주화가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불러오지 않은 것은 참여정부만의 예가 아니다. 남아공에서도 흑인 정권이 들어섰지만 그들 또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서민들의 삶은 개선되지 않았다. 권력은 역시 비민중적인가, 올해 세계사회포럼이 말리의 수도 바마코(1.19~1.23)와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1.24~1.29)에서 열리게 된 것은 신자유주의의 폐허 위에서 집권한 세력들조차 신자유주의에 맞서지 않으면서 ‘다른 세계’를 건설하자는 민중의 요구를 저버린 것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의 농업 개방에서 보듯이, 신자유주의는 나라 경제의 약한 고리를 끊임없이 파괴하며 사회통합에 균열을 일으킨다. 또한 환경 파괴로 당대 사람들만 착취하는 데 머물지 않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의 몫까지 착취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성은 파괴되고, 비정규직, 농민, 성적 소수자, 이주 노동자, 에이즈 감염자 등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계층은 더욱 인권의 사각지대로 내몰릴 위험에 처한다. 우리는 국가인권위의 이번 권고안을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인권정책 방향의 청사진’을 넘어 우리 사회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예상했던 대로 시장과 자본의 이익을 충실하게, 적극적으로, 집요하게 대변하는 수구신문들이 한결같이 반발하는 목소리를 냈는데, 역시 “세금만 축내는 ‘무국적 인권위’의 잠꼬대”라는 사설을 쓴 <조선일보>에 버금갈 만한 몰상식한 신문은 없었다. 인권 권고안이 “일부 진보세력의 주장만을 반영”했다면서 “실정법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조차 무시하고 국민 정서와 법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 전경련, 경총 등 경제 5단체는 특히 공무원, 교사의 정치활동 보장과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등을 지목하며 안보와 사회질서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너나 잘 하세요!”를 떠올린 것은 최근의 ‘엑스파일’ 사건이 떠올랐기 때문만은 아니다. 걸핏하면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이땅의 ‘보수’ 세력에겐 보수할 자유가 영업의 자유뿐인 듯하다. 기본적 인권조차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보수세력에게 보수할 가치는 오직 기득권뿐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입으로는 ‘글로벌’을 말하면서, 유엔, 국제노동기구(IL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의 노동시장이 ‘국제’ 규범에 어긋난다고 거듭 지적해 왔던 사실을 외면하는 까닭을 이해할 수 없다.
정부는 권고안의 내용 중 대부분을 부지하세월의 장기과제로 넘기지 말아야 한다. 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 회원국으로서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국가인권위는 각종 역풍 앞에서 늠름하기 바란다. 다시 강조하지만, 시장에는 인권이 없으며, 어느 사회, 어느 나라에서든 기본인권의 신장은 언제나 기득권 세력과의 정면 투쟁을 통해 따낸 열매였다.
<한겨레> 시민 편집인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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