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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18 21:44 수정 : 2006.01.18 21:44

셀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세계의창

한반도에 끼칠 경제적·지정학적 중대성에도 불구하고 별로 주목을 끌지 못한 행사가 지난해 12월24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다. 중국을 찾은 로두철 북한 부총리와 쩡페이옌 중국 경제 및 에너지 담당 부총리가 황해 해저에서 공동으로 유전을 개발하기로 하는 협정에 서명한 것이다.

이것이 실제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베이징이 평안남도 안주에서 가까운 의심의 여지가 없는 북한 영해에서 평양의 석유 탐사를 돕기로 했다는 점이다. 이 협정은 또한 황해 중앙부를 둘러싼 중국과 북한의 관할권 분쟁을 해소하기 위한 별개의 협정이 협상테이블에 오를 것이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 의미있는 해저 유전 발견은 정체상태에 빠진 북한 경제에 엄청난 자극을 줄 것이다. 한국계 미국인 석유 전문가인 박부섭은 안주 앞바다에서 10억1700만배럴의 석유를 캐낼 수 있는 후보지 5곳을 지목한 바 있다. 그가 손수 개발한 새로운 컴퓨터 감응 기술을 활용한 지진파 검사와 대기 분석에 기초한 추정이었다.

2개의 외국 컨설팅회사, 캐나다의 캔테크와 일본 니쇼 이와이의 한 계열사는 북한의 해저 석유 매장량을 120억배럴로 추정했다. 나는 이 얘기를 지난해 4월 평양에서 윤동철 석유부 부상에게서 들었다. 그러나 그는 이 추정치가 북한이 석유 매장지라고 주장하는 곳의 매장량을 모두 합한 것인지, 단지 안주에서 가까운 황해 동부 지역의 매장량만을 가리키는 것인지 밝히는 것은 거부했다.

지금까지 황해 석유 개발에 외국의 지원을 끌어들이려는 북한의 노력은 두가지 요인에 의해 좌절됐다. 하나는 미국의 경제 제재다. 이는 미국의 기업들 뿐만 아니라 미국의 특허를 받은 기술을 사용하는 외국 기업들이 북한에서 활동하는 것을 막고 있다. 다른 하나는 중국과 아직껏 해소되지 않은 관할권 분쟁이다. 석유 매장지로 가장 유망한 지질학적 구조가 북한과 중국이 합의할 경우 경계선이 그어질 황해 중앙부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것이다. 3년 전 말레이시아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나즈가 평양과 유전 개발 계약을 맺기 직전, 이런 낌새를 알아챈 베이징이 쿠알라룸푸르에 불쾌함을 전달해 결국 거래가 무산된 적이 있을 정도로 이는 민감한 문제다.

중국이 석유 개발의 핵심 부문에서 북한을 돕기로 한 것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하다. 이는 지난 2년 간 진행된 북한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증대를 더욱 가속시킬 것이다. 지난해 11월1일 평양은 지린성에 있는 중국 국영 둥화철강에 북한 최대의 철광석 매장지인 무산철광을 50년 동안 개발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이에 앞서 중국은 북한이 수출하는 석탄과 망간, 그리고 철광석을 포함한 광물의 대부분을 우선적으로 할당받는 지위를 확보했다. 현재 북한 대외무역의 절반은 중국과 이뤄지고 있다. 이런 무역은 지난해 10월23일 양쪽이 서명한 철도 협력 협정이 평양과 선양, 청진·나진과 투먼을 잇는 새로운 철도 건설로 이어질 경우 곱절로 늘어날 것이다. 중국의 북한에 대한 민간 투자 규모는 정확하지 않지만, 어떤 평가는 2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중국인 중개상과 밀수상을 통해 번창하는 암시장을 계산하지 않은 것이다.

1999년 5월4일 서울에서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국제 담당 비서와 나눈 얘기가 떠오른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김정일을 자신들의 영향력 안으로 끌어들이려 애썼다. 그러나 김정일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공개적으로 그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북한의 식량난과 경제 침체가 계속될 경우 그가 도움을 받기 위해 중국에 머리를 숙일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굴복을 강요받을 것이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에 서명한 북한의 결정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평양으로 불러들이려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노력은 부분적으론, 미국을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려는 열망에 의해 유발됐다. 그러나 조지 부시 행정부의 6년에 걸친 대북 적대정책은 북한을 점점 더 베이징에 의존하게 만들어버렸다.

다행스러운 것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강경노선 전환이 남한의 남북 화해와 경제협력 정책 추진과 동시에 일어났다는 점이다. 남한이 북한에 대한 경제 원조를 가속하고, 이미 구조화된 경제협력을 공식화하는 남북연합을 향해 나아가는 만큼, 북한은 중국의 잠식을 제한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난해 12월6일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나온 이른바 ‘느슨한 남북연방’에 대한 남북의 서로 다른 제안들을 조화시키기 위한 대화를 시작하는 데 대북정책의 초점을 맞출 것을 강조했다. 이는 한국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평양과 워싱턴의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세칙들을 논의하려는 노력을 강화하는 것과 병행돼야 한다.

평화협정 체결과 군사정전위원회를 새로운 평화구조로 대체하기 위한 전진은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해서는 안 된다. 부시 행정부가 지난해 9월19일 베이징 6자회담 공동선언의 후속 협상을 이행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딕 체니 부통령은 북한의 위조지폐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허를 찔렀다. 북한의 혐의가 진실이건 아니건, 이 문제는 핵문제보다 중요하지 않다. 이것이 핵협상을 침몰시키려는 의도라는 게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제안한 ‘느슨한 남북연방’의 형태는 해저 유전 공동개발과 같은 영역에서 남북 경제협력을 확장하고 개발하기 위한 상설기구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서울이 황해에 중간선을 긋기 위해 베이징과 벌인 협상을 공개하는 것이 합당하다. 이는 베이징과 평양이 막 시작한 협상과 병행해야 한다. 서울과 평양의 장기 목표는 남북한과 중국의 조화로운 석유 공동개발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것이어야 한다. 석유와 가스를 품고 있는 지질학적 구조가 황해에서 남북한의 경계를 넘어서고, 한반도와 중국의 가상적인 경계를 넘어서기 때문에, 상호조율된 접근법이 필수적이다.

나는 2004년 4월14일 우드로 윌슨 센터와 중국 국제연구소 공동주최로 베이징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사회를 봤다. 이 워크숍에서 신국선 한국석유공사 국내 탐사 및 생산 담당 부사장은 황해 남부 해저를 지나는 군산 분지에 대해 중국과 남한이 모두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지금까지 중국은 황해를 가르는 중간선 개념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24일 북한과 맺은 해저 유전 공동개발 협정은 중국이 이제 그렇게 할 준비가 돼 있다는, 혹은 협력적인 해저 개발에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는 한줄기 희망을 선사한다.

셀리그 해리슨/미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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