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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22 18:11 수정 : 2006.01.22 18:11

유레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얼마 전 상대를 ‘권모술수에 능한 마키아벨리’에 비교하며 설전을 벌였다. 15~16세기의 이탈리아 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를 생각하면, 이 설전은 코미디다. 두 사람은 자신이 더 마키아벨리에 가깝다고 경쟁해야 옳다.

두 사람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마키아벨리 하면 사악함을 떠올린다. 곽차섭 부산대 교수는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논문에서 마키아벨리즘을 세가지로 나눴다. 첫째는, 공익, 특히 국가이익을 위해서는 수단의 도덕적 선악에 관계없이 효율성과 유용성만을 고려하는 마키아벨리 자신의 정치사상이다. 둘째는, 공익을 도외시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인이나 파당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치관행이다. 셋째는, 사회의 삶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리낌없이 남을 희생시키는 처세방식이다. 둘째와 셋째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오해한 것이다.

이런 오해는, 중세를 정리하고 근대의 현실정치세계를 연 고전으로 평가받는 <군주론>을 잘못 파악한 탓이다. 1513년에 썼으나 숨진 뒤인 1532년 출판된 이 책은 온갖 공격을 받은 끝에 교황청의 금서 목록에 올랐다. 잊혀졌던 그를 주목한 이들은 18~19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이었고, 19세기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그를 민족주의 사상의 선구자로 평가하기에 이른다. 또 20세기 초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군주’를 탄압받는 인민들을 위한 ‘집단적 주체’로 재해석했다.

<군주론> 말미에 운명을 위험한 강에 비유하는 구절이 있다. 강이 노해서 평야를 덮치고 집을 파괴하면 인간은 굴복하지만, 미리 제방과 둑을 쌓아두면 그 힘을 통제하거나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비하는 능력(비르투)이 군주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군주의 능력’이라면, 세계화와 미·중·러·일이라는 ‘운명’에 굴복하지 않을 지혜일 것이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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