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1.22 18:17
수정 : 2006.01.22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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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일본 릿쿄대학 교수,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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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올해도 ‘야스쿠니’ 문제가 일본 정치의 큰 화두가 될 것 같다. 새해 벽두부터 고이즈미 총리는 공격적인 언동을 펼쳤다. 1월4일의 연두 기자회견에서 고이즈미 총리는 “외국 정부가 정치가의 ‘마음의 문제’에까지 개입해서 외교문제화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언성을 높였다.
‘외국정부’가 한국과 중국을 가리키는 것은 물론이다. 지난 연말 동아시아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고이즈미 총리를 따돌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방일을 취소한 것에 대한 분풀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국의 총리가 직접적인 계기가 없는데도 연초부터 외국 정부를 비난하는 것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일본 언론들의 반응도 비판적인 논조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직접적이 원인은 다른 데에 있다. 올해 가을로 임기가 만료되는 고이즈미 총리의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비판론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연두 기자회견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더욱 직접적으로 감정을 드러낸 것은 “같은 일본인이 참배를 비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고, 지식인이나 언론인이 비판하는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다”고 한 대목이다. 점증하는 비판 여론에 대한 불쾌감과 반발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부분이다.
주목을 끈 것은 ‘언론인’이라는 단어다. 보수 우파 언론의 중심을 자처하는 〈요미우리신문〉의 와타나베 주필이 지난 연말부터 잇달아 야스쿠니 참배를 비판하는 언동을 펼쳐서 눈길을 끌었다. 그는 연초에 간행된 라이벌 관계의 〈아사히신문〉 계열의 월간지와 나눈 대담에서 “군국주의를 찬미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부당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야스쿠니 공식 참배론자가 차기 총리가 되면 일본의 아시아 외교는 파탄날 것”이라고 한 발언은 보수 우파에게조차 외교적 고립에 대한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이즈미 총리의 ‘언론인’ 발언의 배경에는 보수 정계에도 큰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인물의 파격적인 행보와 발언에 대한 반발이 자리잡고 있다.
일본의 정·재계와 여론에 야스쿠니 참배 비판론이 확산되고 있는 데에는 몇가지 요인이 있는 것으로 지적할 수 있다. 첫째로, 지난해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좌절에서 보이는 것처럼 야스쿠니 참배가 일본 외교의 현장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로, 서서히 대중국 무역 등 경제적인 피해도 가시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재계에 퍼지고 있다. 중국 〈신화사통신〉에 따르면, 중국의 대외무역에서 차지하는 일본의 비중은 2000년 17.5%에서 2004년 14.5%로 저하됐다. 세관협정이나 농산물 검역교섭 등 각 방면에 대립의 여파가 나타나고 있다. 셋째로, 미국으로부터 전해지는 비판과 우려다.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의 정당화는 궁극적으로는 미국과도 부딪치는 역사관이다. 일본의 역내 역할 확대를 추구하는 부시 정권의 동아시아 전략에도 차질을 빚는 “쓸데 없는 도발”(뉴욕타임스)이기도 하다.
고이즈미 총리보다 한층 적극적인 참배론자로서 후계경쟁에서 선두를 달리는 아베 관방장관도 최근 발언이 다소 신중해졌다. 아베 총리가 탄생하면 세대교체로 밀려나게 되는 자민당 중진들은 참배 반대론으로 대립각을 세우면서 공세를 꾀하고 있다. 일본 정계의 구도도 주시하면서, 일본이 ‘야스쿠니’라는 “승산없는 소모전”에서 물러서도록 종용하는 우리의 외교 전략도 구상해 볼 때다.
이종원/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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