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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23 17:41 수정 : 2006.01.23 17:41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칼럼

지난 주 국무회의에서 8·31 부동산대책 수립 유공자에 대한 상훈 수여안이 통과됐다. 6개 부처 7명의 공무원에게 훈·포장을 수여한다는 내용이다. ‘시험성적도 나오기 전에 우등상 주는 일은 없다’는 앵커의 멘트가 전파를 타고 ‘집값 다시 오르면 훈장 회수할 건가’라는 사설도 등장한다. 요약하자면 8·31 대책의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련자들에게 상부터 주는 공무원 사회의 풍토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 시각에서도 이번 상훈 수여안은 느닷없고 어처구니없어 보인다. 어린 시절 훈장을 받은 사람은 살인죄를 지어도 한번은 면해 준다는 근거없는 속설을 들었을 만큼 평범한 사람들에게 ‘훈장’이란 단순한 포상 이상의 상징성을 가진다. 이외수의 소설 〈훈장〉에 나오는 아버지처럼 훈장은 ‘위안의 빛’이며 매번 희고 부드러운 헝겊을 준비한 후 손을 씻고 다뤄야 할 성물이다. 하지만 공직사회에서 훈·포장 수여는 지극히 ‘관행적’이다. 한 해에 훈장 대상자는 1만여명에 이르는데 그 중 80%가 공무원이란다. 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25명 안팎의 공무원이 훈장을 수여받는 셈이다. 해마다 각 부처는 부처에 할당된 훈장 숫자에 따라 포상 공무원을 선발한다. 지난 연말 청와대 종무식 때도 4명의 직원이 훈·포장을 받았다. 이번 상훈 수여안에도 8·31대책뿐 아니라 방사성폐기물처리장, 민자고속도로 등 11개 정책 부문에서 공적을 세운 공무원들이 포함돼 있다.

작금의 비난 여론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포상 추진은 과거 관행대로 정부의 중요한 정책에 공로가 있는 공무원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항변한다. 사기진작 차원에서 관례대로 하는 일인데 왜 이러는지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잡채와 구절판이 놓인 식탁을 보고 “오늘 무슨 날이냐?”고 물었더니 “우린 매일 이렇게 먹는다”는 식이다. 매일 계속되는 식단이라 너무나 익숙한데 까닭없이 제3자가 “식탁이 화려하다”고 딴죽을 거니 답답할 것이다.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에서 8·31 대책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만 상훈 수여 시비를 거느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은 파업할 때가 아니다”라는 관용적 멘트와 별다르지 않다. 어느 때 문제를 제기해도 반응은 비슷할 것이라는 말이다.

일반인이 훈장을 받는 일은 까다로운 상훈규정 때문에 가문의 영광이라고 할 만큼 어렵다. 하지만 공무원은 당연히 해야 할 업무를 수행했을 뿐임에도 자동적으로 훈장이 수여된다. 몇 년 전 영국 하원은 공무원의 훈장 수여와 관련한 보고서에서 그런 현상을 가리켜 ‘부당하다’고 적시했다. 훈장 수여를 할 때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결정하도록 규정돼 있는 것은 그 일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중요 사안을 관습적으로 처리하는 행위는 직무유기에 가깝다.

무궁화 대훈장은, 대통령과 우방국 원수 및 그 배우자만 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훈장이다. 우리나라는 의례적으로 취임식을 전후해서 신임 대통령에게 무궁화 대훈장을 수여해 왔는데 그 관례를 깨뜨린 최초의 인물이 노무현 대통령이다. 5년 임기를 마친 뒤 공적을 인정받고 정당하게 훈장을 받는, 새로운 전통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모든 관행을 근본부터 의심할 수 있는 치열함이 ‘노무현 정신’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그런 대통령이 행정 수반으로 있는 정부에서 벌어지는 ‘관행적 훈장’의 행태는 이해하기 어렵다. 8·31 대책이라는 특정 정책의 시시비비에 앞서 정부 조직의 관습적 태도에 대한 성찰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혜신/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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