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1.26 18:30
수정 : 2006.01.2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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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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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또다시 새해가 시작된다. 언제나 그렇다. 준비 없이 변화 없이 맞이한 연말연초의 어수선한 기간을 보내고 한달 남짓, 음력 1월 1일을 새 출발의 기점으로 다시 한번 리셋해 보는 것이다. 부팅이 잘 되지 않는다. 쓸모없는 파일, 무의미한 프로그램이 너무 많이 깔려서일 것이다. 병술 개야 이제부터 진짜로 짖어다오, 내 마음의 반도는 너무나 낡았단다.
오래 전에 어니스트 벤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짖었었다. ‘자유란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의 노예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도나캐나 노예라는 것일까. 그래도 잠시 머리를 들어 예의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을 떠올려본다. 흥미롭게도 아니 끔찍하게도 그 두 가지 모두에 해당되는 것이 발견된다.
그것은 나 자신이다. 거울을 쳐다보며 외친다. 어떻게 저런 인간이! 하지만 저런 인간이, 하고 비난하고 있는 내 안의 또 한 사람에 대한 상상 못할 애착과 집착에 대해 할말을 잃는다. 좋아하지 않으면서 좋아하도록 프로그래밍된 것. 사람들은 그것을 자아라고 부른다. 그 자아는 곱창처럼 구불텅구불텅 꼬여 있다. 그 꼬임의 상태를 유발하는 기제를 별도로 일컬어 자의식이라고도 한다.
어니스트 벤은 자유를 말하고자 했었다. 나는 자유의 술어로 자아와 자의식을 대입시켜 보았다. 그러나 자아의 자유, 아, 그 말은 너무 한가롭거나 종교적으로 들린다. 온전하게 독립된 자아의 상태에 머물도록 내버려 두는 세상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아가 연장된 어떤 관계, 가령 내 존재가 등재된 국가이거나 통시적으로 연장된 민족과 결부시켜야 온전한 것이 되도록 훈련받아 왔다. 그것이 윤리적 강제이건 습관이건 혹은 자발적 노예의식이건 어쨌든 자아와 국가와 민족은 비빔밥처럼 섞어찌개처럼 한 그릇 안에 뒤섞이고 들끓도록 ‘레시피’(조리법)가 짜여 있는 것이다. 그런 레시피, 자아와 국가와 민족을 일체형 세트로 만들어 놓은 것이 이른바 근대 국민국가론이라는 거대한 허상이다. 아울러 우리에게 체화된 국민국가 의식은 철저하게, 거의 완벽하게 일본의 담론체계를 원조로 하는 것이다.
며칠 전 신문에서 ‘지난해 출국자 수 1천만명 돌파, 출입국 합산 3천만 상회’라는 기사를 보고 아연했던 기억이 난다. 수년 안에 한해 출입국자 총수가 5천만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이 땅은 이제 내가 익숙하게 알아왔던 그 땅, 그 나라가 더는 아닌 것이다. 자아로부터 국가와 민족을 분리해내서 관계 재정립을 도모해야 할 시점이 무르익은 것 같다.
‘몽상가만이 진정한 현실주의자’라는 말이 있다. 다분히 몽상가적 기질이 있는 노무현 대통령에서부터 차기를 노리는 지도급 정치인 모두가 이러한 상황변화, 그에 따른 인식의 대변전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어떤 정치적 언어를 입게 될지 예측하지 못한다. 다만 개인 차원에서라면 국가를 만나면 국가를 죽이고, 민족을 만나면 민족을 죽이고…. 어설프게 조주선사 흉내를 낼지 모른다. 아마도 그 과정의 끝은 자아를 만나면 자아를 죽이는, 도저한 경지가 될 것이다.
새해, 음력에 기댄 한번 더 새해다. 경기침체로 허덕인 지난 몇 해 내내 ‘먹고사니즘’에 치여 우리에게 비타민처럼 필요한 추상적 담론들이 외면받아 왔다. 계속 이러다간 마음의 병이 깊어진다. 새해여, 병술 개여, 토하고 논하라. 시스템 리부팅 차원으로 확장하라. 우리들 마음의 반도는 이제 너무 낡았다.
김갑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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