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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30 17:39 수정 : 2006.01.30 17:39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선진대안포럼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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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눈에 띠는 현상 중 하나는 좋은정책포럼, 새희망포럼 등의 이른바 ‘뉴 레프트’의 등장이다. 여기서 ‘이른바’를 붙인 것은 이런 이름짓기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에 대한 관심이 진보 진영이 아니라 오히려 보수 진영에서 높다는 점이다.

보수 진영에서 이른바 뉴 레프트를 반기는 이유는 ‘뉴 라이트’와 긴밀히 연관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등장한 뉴 라이트에 대해 보수 진영은 환영했을지 몰라도 진보 진영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 이유는 상대방을 인정하면 세력이 커진다는 정치적 고려만은 아니었다. ‘올드 라이트’와의 차별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게 주요 이유였다.

이념의 진화는 기존 이념에 대한 새로운 문제 제기를 통해 가능한 법이다. 시장의 자유와 사유재산 제도만을 반복해 강조한다면 그것은 결국 사회적 양극화와 기득권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뉴 라이트가 정치적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뉴 레프트와의 가상적인 대립구도를 만들어 존재 의의를 찾을 게 아니라 현안들에 대한 설득력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뉴 라이트를 이렇게 볼 수 있다고 해서 최근 진보 진영에서 관찰되는 어떤 관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일부 노동조합의 집단 이기주의와 도덕적 해이, 그리고 일부 시민단체의 근본주의와 비타협주의는 문제점으로 지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비판이 좌파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운동과 진보적 시민운동으로 대표되는 한국적 좌파는 1990년대에 와서야 정치적 시민권을 회복했으며, 최근에는 세계화에 대한 대응을 암중모색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서구식 분류에 따라 굳이 ‘뉴’와 ‘올드’를 구분한다면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운동을 중시하는 전통적 좌파와 신사회운동을 중시하는 새로운 좌파가 공존해 왔다. 경제가 압축 성장을 이뤄 왔듯이 냉전분단체제 아래에서 불허된 진보 이념 역시 압축 발전해 온 셈이다. 전통적 좌파와 새로운 좌파의 대표격인 민주노총과 환경운동연합이 연대활동을 활발히 벌여 온 것은 한국적 특수성이자 강점이기도 하다. 이런 전후 맥락이 최근 등장한 포럼들을 뉴 레프트라 이름짓기에 진보 진영이 망설이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이른바 뉴 레프트 그룹은 90년대 후반 등장한 서유럽의 ‘제3의 길’과 매우 유사하다. 이 제3의 길은 좌파와 우파를 절충하려는 ‘신(新)중도’에 가깝다. 오늘날 세계화 시대에 이념의 분화는 자연스런 일이며, 어떤 이념적 좌표를 내걸지는 스스로 선택할 문제이다. 다만 뉴 레프트 담론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기존 진보 진영의 고투(苦鬪)를 낡은 의미의 ‘올드 레프트’로 자리매김하는, 의도하지 않은 ‘정치적 효과’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닌지 주의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지속가능한 진보’의 구체적인 콘텐츠다. 오늘날 전지구적으로 진보 진영의 고뇌는 시장의 원리와 지속가능성이 과연 어디까지 양립가능한가에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일종의 숙명론이다. 세계화가 경쟁의 원리를 강제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하더라도, 시장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는 국가마다 전략 및 경로가 다르다.

현재 진보 진영이 직면한 이슈는 고용 없는 성장과 일자리 창출, 시장 개방과 성장 시스템 개편,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재원 확충, 경제성장과 환경보존의 조화, 남북화해와 동북아 평화공존 등 다양하다. 더욱이 진보적 해법들 사이에는 해소하기 어려운 긴장이 존재한다. 앞선 국가들의 시행착오를 교훈으로 삼되, 사회적 형평성과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는 정책 대안 개발에 더욱 주력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3년 동안 전개될 지방선거, 대선, 총선 과정에서 좌파와 우파 사이의 그리고 내부의 이념 및 정책 논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돌아보면 우리사회에서 정책에 기반한 제대로 된 이념 논쟁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생산적인 결실을 맺길 기대한다.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선진대안포럼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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