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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30 17:41 수정 : 2006.01.31 09:24

이기호 평화포럼 사무총장

세상읽기

신정과 구정 사이에 세계 여러 나라는 선거혁명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다. 분쟁이 끊이지 않는 중동지역에서는 이스라엘을 지구상에서 흔적도 남기지 않겠다며 무장투쟁을 전개해 왔던 하마스가 60.3%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지난 주 25일 팔레스타인 의회를 장악했다.

좌파정권이 연이어 집권에 성공하고 있는 남미에서는 중도좌파 소속인 미첼 바첼렛이 15일 칠레에서 처음으로 여성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볼리비아에서는 최초로 원주민 출신인 모랄레스가 볼리비아 대통령에 22일 취임했다. 그는 전통적인 인디오식 취임식에서 식민지적 국가체제와 신자유주의 모델을 종식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최초로 선거에 의한 여성대통령이 선출되어 16일 라이베리아 새 정부를 출범하였다. 핀란드에서도 최초의 여성대통령인 할로넨이 15일 1차 선거에서 다수를 차지해 재집권이 확실시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캐나다에서는 23일 13년만에 보수당이 재집권하게 되었다.

최근의 선거는 지난 20여년간의 사건들을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세계시민들의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 전세계로 번져나갔던 민주화투쟁과 독재정권의 붕괴, 그 자리를 메우면서 세계화를 주도한 신자유주의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출범 그리고 새로운 제국주의에 대한 극단적 저항으로 표출된 9·11테러와 미국의 이라크공습에 따른 ‘테러와의 전쟁’ 등이 그것이다. 확실히 이번 선거들 속에는 몇 가지 선택의 기준이 공유되고 있다.

첫째, 미국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둘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남미에서 불고 있는 좌파정권의 확대와 중동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미투쟁의 격화는 오만한 제국으로서 미국에 대한 거부와 배제이며 나아가 자주적인 블록을 형성하려는 노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대로 캐나다,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세계는 점차 반미와 친미로 입장을 밝히길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

둘째, 민주화 이후 경제문제가 선거의 성패를 좌우하고 있다. 시민들은 좌파와 우파를 선택하기보다는 무엇이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에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성장의 동력과 분배의 정의가 신자유주의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제는 신자유주의를 강화하려는 세력과 저항하려는 세력 모두 강한 민족주의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그럼에도 화해와 평화를 간절히 바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예컨대 칠레, 핀란드, 라이베리아의 여성대통령들은 한결같이 강철의 이미지가 아니라 모성을 가진 어머니의 이미지로 부각되고 있다. 시민들은 내전과 반목으로 얼룩진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용서와 화해의 리더십을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자체를 부정해 오던 반체제그룹 하마스가 체제로 들어간 것 역시 우려의 목소리도 높지만 대화와 타협으로 일보 전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새해 벽두에 치러진 일련의 선거에는 희망과 절망이 모두 담겨 있는 듯하다. 앞으로 매년 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 또한 이러한 기준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국과의 거리두기를 어떻게 할 것인지, 국익에만 의존하여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눈을 감을 것인지, 자주적이고 열린 연대를 통해 대화와 화해를 국가의 원리로 세울 것인지 하는 갈림길에서 세계는 계속 갈등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러한 갈등의 핵심에 있는 우리가 양분·양극으로 치닫는 세계질서를 희망으로 중재해 갈 수 있는 실마리를 쥐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기호/평화포럼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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