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그제 전격 귀국했다. 지난해 9월 이른바 ‘엑스파일’ 사건 수사가 본격화될 즈음 출국한 지 5개월 만이다. 도피성 출국이란 비판 여론에도 그는 건강상 이유를 들어 국외 체류를 고집했다. 그 사이 국회 증인출석과 검찰 소환조사를 모두 피했다. 결국 검찰은 지난해 말 삼성의 불법 대선자금 제공 의혹을 무혐의로 처리했다. 갑작스런 출국이 그랬듯이, 이 회장의 귀국 또한 여론과 상황에 대한 계산이 분명해 보인다.이 회장은 입국장에서 “지난 1년 동안 소란을 피워 죄송하다. 책임은 전적으로 나한테 있다”고 소회를 털어놨다고 한다. 앞으로 자신이 책임질 일을 피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면 적극 환영할 일이다. 우선 그는 삼성에버랜드 주식 편법증여 사건의 핵심 피고발인이다. 1심 법원은 아들 이재용 상무에게 에버랜드 주식을 헐값에 배정한 행위에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 회장 일가의 변칙상속과 부당이득 여부도 법적 판단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 회장 스스로 검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마땅하다. 검찰 주변에서 벌써부터 이 회장을 당장 소환하거나 출국을 금지할 계획이 없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검찰은 ‘삼성 장학생’이란 오명을 씻을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수사에 임해야 한다. 정치권은 엑스파일 내용을 조사할 특별법·특검법 논의를 하루빨리 재개해 매듭지어야 한다. 공소시효나 독수독과 이론에 기댄 무혐의 처분이 정-경-언 유착에 대한 국민적 의혹까지 묻어버릴 순 없기 때문이다.
잘나가는 삼성 내부에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는 말이 나오는 건 역설적이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문제는 국내 최대 그룹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감 없이는 풀 수 없는 문제다. 지분 취득에 법적 하자가 없다며 법리 공방을 벌이거나, 사회공헌사업 등 곁가지 꼼수로는 ‘삼성 독주론’만 드세게 할 뿐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총수 일가의 경영권과 후진적인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편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관행은 이젠 끝내야 한다. 이 회장 스스로 ‘은둔의 경영’을 끝내고 사회와 대화에 나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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