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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의 고통과 한 풀길 찾자 |
문둥병, 나병으로 알려진 한센병은 이제는 거의 잊혀진 병이다. 세계보건기구는 1980년대 중반 우리나라가 한센병 퇴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으며, 현재 활동성 환자는 500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1만6천명에 이르는 한센 병력자들은 나날을 고통과 한 속에 살고 있다. 병은 나았지만 사회적 편견과 외면으로 ‘천형’의 굴레를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센인 인권보호 단체인 한빛복지협회가 최근 한센병 1세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전국 88곳 한센인 정착촌에 세워진 건물 대부분이 무허가로, 상·하수도 등의 기본적인 생활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돼지나 닭을 주로 쳐온 한센병 1세대 가구주들의 한 달 평균 수입은 예전보다 되레 줄어 25만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열악한 생활 여건에 더해 한센인 10명 가운데 7명은 가족·친척이 있어도 만날 엄두를 내지 못하거나 아예 연락을 끊을 정도로 편견의 사슬에 묶여 있다.
정착촌이나 소록도병원 같은 보호시설을 벗어난 ‘재가 환자’의 처지는 더 딱하다. 9천명이 넘는 이들은 대부분 과거에 한센병을 앓았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서 버림받거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구걸로 생계를 이어가는 등 어렵게 살고 있다. 그러나 연을 끊고 사는데도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 보장 수급 자격을 얻지 못하는 실정이다. 게다가 한센 병력자들은 손, 얼굴 등에 기능장애가 있지만 장애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등 그야말로 생존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일제는 한센병 환자를 격리시키고 결혼을 앞둔 남자들에게 정관수술을 하는 등의 야만적인 차별정책을 폈다. 광복 뒤에는 소록도 인근 섬을 개간하던 한센인들이 주민들의 습격을 받아 희생되거나 군사정권의 개입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치료약이 개발되고 전염 위험이 거의 사라졌는데도 이런 편견과 차별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필요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
한센인들과 인권보호 단체들은 치료 중심의 정책을 복지정책으로 바꾸고, 정부 조직에서 저지르거나 방조한 인권침해 행위를 밝혀내 보상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지극히 정당한 요구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와 국회의 입법 움직임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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