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2.14 21:42
수정 : 2006.02.14 21:42
사설
유신정권 때인 1973년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다가 의문사한 최종길 서울대 법대 교수의 유가족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유가족에게 18억4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서울고등법원이 판결했다. 환영한다.
재판부는 사건 실체와 관련해 최 교수의 죽음이 고문 등 가혹행위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나아가 피고인 국가가 주장한 소멸 시효론을 배척했다. 재판부는 “중앙정보부가 처음부터 치밀하게 조작·은폐함으로써 의문사위가 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까지는 원고들로서는 사건의 진상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가의 소멸시효 주장은 신의성실 원칙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사건 발생 3년, 5년 안에 배상을 청구하지 않으면 효력을 잃는다는 법률 규정보다는 사회 정의라는 법 정신의 실현이 더 중요하다는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법 해석이다. 2003년 수지 김 사건에 대한 유가족의 손해배상 소송 때도 같은 판결이 나온 바 있다.
물론 소멸 시효를 통한 법의 안정성도 중요하고 지키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 보듯 법의 안정성을 크게 해치지 않는 한 사회 정의가 우선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동안 고문이나 간첩사건 조작 등 과거 권위주의 시절 국가기관이 저지른 범죄 행위가 많이 드러났지만, 대부분은 단지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로 가해자 처벌뿐만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배상의 길이 막혀왔다. 이래서는 정의가 바로 설 수 없다. 역사의 교훈으로 삼을 수도 없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정치권은 국회에 계류 중인 반인권적 국가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배제하거나 일정 기간 정지시키는 특별법 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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